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괴로움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집을 나온 지 벌써 23일이나 되었고...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오늘 숙소에서 몸무게를 재보니 세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바뀌어 있었다. 배 터지게 먹고 배 뚜드려야 제대로 먹은 것인데 이놈의 나라는 그게 어려우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솔직히 돈 쓰면 배불리 먹을 순 있지만 말이다.
좋았던 평지 구간이 오늘로써 끝이 났다. 숨이 찰 일도 별로 없었던 행복했던 지난 며칠이었다. 다시 산악 구간으로 접어드는 내일부턴 거친 숨소리와 힘겨운 발걸음 소리만 들릴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극 중 탕웨이가 자신의 숨소리에 맞춰 불면의 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장면이 있다. (영화적 장치나 의미를 배제하고) 단순히 숨소리를 맞춘다는 것은 꽤나 소름 돋는 일이다. 호흡을 같이 한다는 느낌일까. 매일매일 20km 넘게 걷다 보면 아무리 평지라도 숨이 찰 때가 있다. 그때 간혹 발걸음과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군인들의 칼 같은 제식에 이어 들리는 그 '착착' 거리는 소리에 전율을 느끼듯, 숨소리와 발걸음이 맞아떨어질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사실, 며칠 전부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 길을 잘 걷고 있는 것인가. 물리적으로야 건강히 매일매일 잘 걷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다른 의미로 잘 걷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매일 이렇게 걷다 보니 이젠 별로 피곤하지도 않다. 체력도 늘고 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에 잡생각이 많이 든다. 그럴 땐 외국 사람들처럼 확 40-50km씩 걸어버려야 하는데 쫄보라 그런 것도 못하니 나는 아마 총체적 난국이리라.
그 불안함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몇몇 분들은 '얻지 못하면 뭐 어때?'라는 식으로 위로해 주지만 나에겐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뭔가를 얻고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열흘 남은 시간을 조금 다르게 사용해 보려고 한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시간이 정말 아쉽기 때문에 내 숨소리와 발걸음을 동기화시켜봐야겠다. 자연의 소리는 많이 들었으니 이제 분리하여 내 소리를 조금 더 들어봐야겠다. 순례자 생활은 이제 적응이 되었으니 굳이 뭘 더 할 필요 없다. 이제 남은 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뿐이다.
후회 없이 감정은 모조리 쏟아 내고 비우는, 내면의 깊은 곳까지 훑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