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향하여
5시쯤 되었을까. 하루를 또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하던 대로 1층 식당으로 내려와 짐을 꾸렸다. 한 명의 외국인도 같이 내려왔다. 같이 짐을 꾸리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분은 짐을 다 꾸린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한다고 했다.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네며, 알베르게 문을 열었다. 출발하는 이가 적은 6시, 저벅저벅 어둠 속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라는 마을에는 ‘여왕의 다리’가 있는데, 깜깜한 새벽이라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제 와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니 다시 어둠으로 가득했다. 오늘은 좀 진지한 날이 될 것 같았다. 이래저래 생각을 많이 한 날이었다.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해진 삶 덕분에 저 멀리 두고 온 어떤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인생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가기도 했다. 나 역시 그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단순해진 삶 덕분에 복잡했던 나의 인생의 문제들이 큰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고, 명료함을 가져다주는 이 길은 답을 주기도 했다. 그러기에 앞서 나는 이 길에 왜 서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해결되어야 했다. ‘15년 전에 꾼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답으로는 만족될 수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는 대답도 충분하지 않았다. 진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솔직히, 갑작스러운 퇴사가 맞았다. 서른 살에 준비했던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다르게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두 가지의 거창한 이유는 나의 이 충동적인 결정을 포장하기에 아주 예뻤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포장했는지가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조금씩 벗겨보니 내면에 숨겨진 욕망과 어두움이 곧 드러났다. ‘인생 최대의 업적’을 만들기 위해서, ‘너희들은 못하는 거잖아’라는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단지 그런 이유로 나의 무대를 순례길로 바꾼 것이었다. 솔직히 이런 이유라면 나는 당장이라도 중단해야 한다고 믿었다. 멋없고, 추잡스러운 마음으로 완주할 이유는 내게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무엇일까. 재빨리 욕망은 얼른 스페인 평야에 버렸다. 다시는 꿈틀대지 못하게 발로 밟아서 으깨버렸다. 다시 조금 더 벗겨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거룩한 종교심이었을까. 전도사로 사역을 하다가 공장에까지 흘러들어온 거라면, 필히 무언가 가슴에 뭉친 게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당장 사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삶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사역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어쩌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전가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혹자는 나의 이 행태를 보며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순례길을 완주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심각함은 자연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었나 보다. 그 시각, 해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저번에 만난 미국 청년처럼 두 팔을 벌려 따뜻한 해의 기운을 온몸으로 마주했다. 잠시 그러고 있어도 될 만큼 오늘 나의 길은 여유 있었다. 많은 포도밭 사이를 지났다. 누군가의 말처럼 ‘포도밭의 파수꾼’이 된 것 같았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마음도 훨씬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복잡했던 생각이 순간 환기되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동이 튼 아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에스테야(Estella)’로 가는 길은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아팠던 무릎도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졌다. 좀 봐야 알겠지만, 매일 걷는 것에 적응을 마친 것 같았다. 에스테야까지는 거리도 20km 남짓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6시에 출발했기에 금방 도착했다. 마을의 뜻은 바스크어나 스페인어나 모두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했고, 아름다웠다. 오늘은 특별히 호스텔로 예약을 했다. 그동안의 걸음이 고되었는지 생각보다 피곤했다. 오후 1시에 오픈이라 점심도 먹고 구경도 할 겸 동네를 돌아다녔다. 나는 음식에 대해선 다 잘 먹어서 큰 문제는 없었으나, 주문하는 것과 식사 시간대가 안 맞는 것은 끝날 때까지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크게 그들의 눈에 실례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게 생각났다.
호스텔 아드리안 사장님과 즐겁게 대화를 했다. 마음속에는 ‘왜 여기에 올랐는가’하는 질문을 담은 채 말이다. 혹시나 이분들과 이야기하다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될까 하는 심정으로다가. 그날 밤 나를 온통 헤집어 놓은 간단하지만 그렇지 않은 저 질문 하나로 꽤나 심각하게 보내었다. 다음 날에 지장을 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