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너
니체를 공부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교양 강좌도 있었는데, 니체에 대한 나의 인식이 여전히 좋지 않아 도전하지 못했다. 니체나 라캉 등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무서운 분들에 대한 지혜를 감히 접근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핑계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개념은 참으로 멋졌다. 아주 단순하게 초인은 창조적이고 자기 초월적인 삶을 사는 인간상을 말한다. 나는 초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능력이 있고, 강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런데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개념이 이와는 다르다고 하더라.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권력 의지와 연결이 되어야 그 개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권력 의지는 인간 존재와 세계를 설명하려는 그의 핵심적인 사상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힘의 추구나 지배하려는 욕망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 의지는 초인이라는 인간상의 삶의 본질적 동력을 의미할 뿐이다. 다 떠나서 처음에 이 개념을 접했을 때, 단순하게 강한 사람을 떠올렸다고 아까 말했다. 공부하지 못한 나의 무식함이 부끄럽다고 느끼던 찰나, 그렇게 생각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적이고 자기 초월적인 삶을 사는’ 이 말이 강한 사람들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초인들을 적잖게 만났다. 예전에 나의 스승님이 그런 분이셨다. 창조적이고, 지극히 목표 지향적이시며,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의 고통과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해 내시는 분이었다. 특히, 다른 부분보다 삶의 긍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고난이랑 어려움조차 자신과 공동체의 성장 혹은 창조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그런 가치관을 가져보려고 묻고 배웠다. 그분의 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진 못했지만, 진한 흔적이 남아 비슷한 방법으로 삶을 대하게 되었다.
집에도 한 명 있다. 특히,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개념 중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게 ‘삶의 긍정’이라는 부분이다. 동생은 아주 어릴 적부터 희귀한 병에 걸리게 되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완치 판정 이후 갖게 된 여러 후유 장애들은 그의 삶에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내가 느끼기에는 그것이 그의 인생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잘 지내고 오히려 뛰어난 부분도 많았다. 미국 이민 후 낯선 땅에서 버티어냈던 청소년기의 모습 역시 내가 생각하는 초인의 모습과도 같았다. 악화된 건강 때문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모습 역시 나는 그렇게 초인처럼 보였다. 특히, “내가 알아서 할 게”라는 다소 빈정거리는 말도 어찌 보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알 수가 없다.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참 알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가족도 이렇게 속을 알 수가 없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쉬이 알 것 같다는 자만을 보인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시대 수많은 초인이 많이 있다. 각자 자신만의 방향으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위대한 초인들 말이다. 여전히 알 수 없고,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겠지만, 그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야 하는 나 역시 초인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 그리고 성장하고 싶다. 나아가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고난과 역경들을 헤쳐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