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아니라, 균열과 신호로 세상을 읽었던 나
감정이 늦게 도착하는 마음은,
유년기부터 차곡차곡 구조로 쌓여 있었다.
이 기록은 그 느린 마음이 처음으로 흔들리고,
서서히 변화를 마주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정서적인 아이였다.
누가 울면 나도 따라 울었고,
남이 아프다고 하면 내가 더 먼저 아팠다.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아파할 걸 생각하면
그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상상됐다.
결국, 나는 때리지 못했다.
감정은 눈물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데서
알 수 없는 통증처럼 스며들었다.
'느낀다'고도, '아프다'고도
말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내 마음 어딘가에 닿아 있었다.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눈치는 잘 못 챘고,
표정보단 상상에 더 몰입했다.
수업시간엔 가끔씩 자리를 뜨고,
지우개를 뭉치거나 공상에 빠진 채
딴짓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지금은 안다.
나는 ADHD였다.
주의는 자꾸 흐트러졌고,
머릿속은 늘 산만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약을 먹으면 멍해질까 봐
일부러 검사를 피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유별나고 산만한 아이로
조용히 남겨져 있었다.
나는 착한 아이였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않았고,
누가 뭐라 해도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를 내면 안 된다.’
‘친구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런 말들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렇게 해야 모두가 나를 좋아해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종종, 장난감처럼 다뤄졌다.
누가 시키면 그대로 했고,
‘말 잘 듣는 애’,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애’로 불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들의 대화를 들었다.
“쟤는 멍청해서 시키면 다 해.”
그 말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았다.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착한 건 좋은 거지?”
“그럼, 착하면 좋은 거지.”
“근데 왜 친구들은 나보고 멍청하대?”
엄마는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
“…너무 착하면 안 되고, 네가 하고 싶은 말도 해야지.”
그 대답은,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착하면 좋은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그 착함이 누군가에겐 ‘멍청함’으로 보이는 걸까.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같은 다짐을 했다.
“이번엔 잘 지내보자.”
“이번엔 왕따 안 당하게 해보자.”
“이번엔 진짜 친구를 사귀자.”
항상 그렇게 시작했다.
먼저 다가갔고,
먼저 말을 걸었고,
눈치를 보며, 최대한 맞춰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늘 어색한 애가 되었다.
내가 던진 말은 어딘가 엇나갔고,
내가 웃는 타이밍은 늘 조금 늦었고,
사람들이 어울리는 리듬에
나는 이상하게 박자가 맞지 않았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그냥 잘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조심하면
다음엔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렇게 해마다—
나는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하며
다시 돌아오는 루프를 살고 있었다.
울고 싶었던 날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잘 울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속상하다고 말하는 것도 어려웠고,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하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나는 감정을 꺼내기보다는
이야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차돈 이야기를 꺼내 읽었다.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킨 사람.
죽음을 앞두고도 뜻을 굽히지 않은 이야기.
나는 그 장면을 반복해 읽었고,
그 구조를 이해했고,
그 안에서만큼은 내 감정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 속이었기에, 나는 울 수 있었다.
단순한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이 정도는 슬퍼도 괜찮다.”
어떤 판단이, 감정보다 먼저 왔다.
나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그 감정이 정당한지,
그 상황이 울 만한 건지를 먼저 따졌다.
그래서였을까—
슬픔은 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납득한 뒤에야 겨우 허락되는 것’이었다.
교실에서는 늘 참는 쪽이었다.
시켜도 따라야 했고,
억울해도 넘겨야 했다.
거절은 어려웠고,
도움을 요청하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그런데, 방과후 과학실에서는 달랐다.
그곳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다.
나는 과학을 좋아했다.
문제는 풀렸고,
이유는 설명할 수 있었고,
‘안다’는 느낌이
나를 살게 했다.
수업시간엔 가끔 자리를 뜨고,
지우개를 뭉치거나
공상에 잠기던 아이였지만—
과학실 안에서는
누구보다 정확하고,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모르는 친구를 향해
“그것도 몰라?” 하고 말했고,
나만이 아는 세계에서
작게나마 권력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문제를 틀렸고
나는 말했다.
“그것도 모르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가 한번 맞혀볼래?”
나는 자신 있게 외쳤고,
정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오답이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잘 걸렸다, 요놈.”
그리고 내 머리에
꿀밤을 탁—
진짜 아팠다.
골이 울릴 정도로.
웃으며 넘겼지만,
그 순간은 오래 남았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이상했다.
‘왜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 거지?’
‘내가 아는 걸 틀릴 수도 있구나.’
그 꿀밤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구조의 균열이었다.
처음으로, 실패를 느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지’보다
‘필요한지’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내게 도움이 될까?”
“저 아이랑 엮이면 피곤해질까?”
감정보다
판단이 먼저 작동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가능했다.
감정은 어느새
기능이 되었고,
감정 표현은
생존 방식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정말,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렸다.
무시당해도,
소외돼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화가 나야 한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
그게 무서웠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프다는 걸
너무 늦게 인식하게 된 것.
그 시간차 속에서
나는 감정을
기억이 아니라
구조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나는 점점 더
사람들이 감정으로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누군가는 수업 중에 울었고,
누군가는 말 한마디에 발끈했다.
그 모든 반응이
내겐 낯설고, 과했다.
‘왜 저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나는 당황했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질문을 반복했다.
감정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그건 공감이 아니라
패턴 분석에 가까웠다.
사람들의 말투, 억양, 표정—
나는 그것들을 조각처럼 수집해
내 안에 규칙처럼 저장했다.
마치 감정을 시뮬레이션 하듯.
감정은 점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반응’이 되어갔다.
나는 적절한 표정을 흉내 냈고,
적절한 반응을 계산했다.
어색하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불필요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
내가 먼저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늦게 도착했다.
상황을 정리한 후에야
그제야 겨우—
"아, 그게 섭섭했던 거구나"
하고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미리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은
판단과 검열을 거쳐야만
비로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저 ‘느껴지는’ 감정은
나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분명 피곤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그저 이렇게라도 해야
남들과 섞여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감정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하나의 구조를 만들고 있었고—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대학생 때 나는
늘 혼자였지만, 외롭진 않았다.
대회에서 상을 받고,
수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과 안에 내 이름은 알려졌지만—
정작 함께할 사람은 없었다.
동기들과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가볍고 반복적인 이야기가
내겐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을 속으로
‘수준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 판단하며
거리 두기를 선택했다.
그 거리 두기는
어느새 자존심이 되었다.
반면 교수님들과의 대화는 달랐다.
수업이 끝나면 찾아가
“이 문제를 이렇게 바꾸면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조심스레 조언했다.
나는 그곳에 내 자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내 하루를 지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학생 형들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차갑진 않았지만
분명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너, 사람들한테 되게 불편한 존재야.”
“말투가 너무 강해서,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져.”
“우린 네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이대로는 오래 못 갈 거야.”
그 말은
내가 처음으로 받은
솔직한 정면 피드백이었다.
혼내려는 것도,
상처 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고마웠다.
누군가가
나를 부수려 한 게 아니라,
세워주려 한다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흔들렸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말을 들으면
멘탈이 무너지거나,
눈물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고
조용히 느꼈다.
진심은 통한다 믿었고,
바꿀 수 있다면 뭐든 할 각오였다.
형들은 내 반응이 낯설다는 듯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말투를 낮추고,
너무 앞서가지 않는지
스스로 자주 점검했다.
변화는 느렸고,
한동안 어색했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관계는 논리로 설계하는 게 아니고,
이해만으로 감정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걸.
나는 늘 감정을 해석하고
정리하는 데 익숙했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구조 속 어딘가에서
조금 늦게 도착하는 감정을
조용히 기다릴 줄 안다.
느낌보다 판단이 앞서던
내 삶 속에서—
이제는 그 판단 너머로
감정이 스며들기도 한다는 걸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나는 감정을 해석하며 살아남았고,
이제는 감정을 따라
살아보려 한다.
이번 화는 조금 길었습니다.
아마도 유년기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속의 감정 구조를 한 번에 담아보려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쓰는 내내 정리가 아니라 기억 속을 걷는 느낌이었고,
그래서일까요,
저 자신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 계속 헤매었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다소 무겁고,
낯설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무게를 꺼내는 것이,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감정을 배우는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긴 글,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록이 어디선가,
늦게 도착하는 감정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