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위로

사춘기의 문턱에서

by AJ

가족들을 다시 만났지만

배고픈 날은 계속됐다.


늘 부족한 먹을 것에

굶주림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몇 달 사이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먹을 것이 보이면

살쾡이처럼 날카롭게 눈을 번뜩였고


머리속에서는

어떻게든 그것을 차지할 방법을

빠르게 계산했다.


성미는 점점

독해져갔다.


창고집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북한에서는 밥을 지으려면 불을 때야 한다.

할머니는 아침에 불을 피울 때

어른들이 돌아와 먹을

점심밥까지 함께 지어두었다.


추운 날이라

밥을 퍼 담고 뚜껑을 덮은 뒤

이불을 덮어 방 안에 두었다.


어른들이 일하러 나가는 시간

나는 그 틈을 노렸다.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는

손을 넣어 밥을 한 움큼 꺼내

급하게 입에 넣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처음에는 숨어서 몰래 먹었지만

퍼먹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잘못된 일이라는 걸

분명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손을 대기 시작하니

죄책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른들이 먹을 점심밥을

죄다 훔쳐먹고나면

배는 불렀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계속 입안에 음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뱃속에 뭔가를 채워 넣어야만 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혼냈고

나중에는 못난이 삼촌도 못 참고

소리를 질렀다.


"이 간나새끼 나가!!!!!"


커다란 발로

엉덩이를 퍽퍽 차이며

집밖으로 쫓겨났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

모르는 척 다시 방에 들어갔다.


혼나고 쫓겨나는 일이

며칠이고 반복되었지만

반성은 커녕 늘 사고를 치고 다녔다.


한번은 아빠가 담배장사를 하는 때였다.

담배 외상을 주었던 집에서

돈 대신에 찹쌀500g을

아빠에게 전달해달라고 건네주었다.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지만

손에 쥐어진 찹쌀을

얼른 먹어치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찹쌀을 꼭 끌어안은 채

사람들 눈을 피해 구석으로 숨어들어가

생쌀을 오독오독 씹으며


그 자리에서

홀라당 다 먹어버렸다.


아빠에게 들킨 건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온 아빠의

눈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외상값으로 받은 쌀

어디 뒀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자

아빠의 눈이

점점 더 매서워졌다.


"어디에......

다 먹은거야?"


긴장감에 몸이 굳었다.

맨바닥만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손을 움켜쥐고

발가락이 꼼지락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걸 혼자 다 쳐먹어?"


억눌려 있던 분노가

그대로 터져 나왔다.


"우리 다 굶어 죽으라는 거냐고!!!!"


퍽-


뒷통수를 얻어맞고

등으로도

연달아 충격이 내려왔다.


매서운 손이

몇 번이고 이어졌다.


말 그대로

쳐맞는 게 너무 무서워서

방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쳤다.


옥수수밭이나

키 큰 농작물이 길게 늘어선 곳에

몸을 숨기고

하루를 버텨야 했다.


맞은 몸을 끌어안은 채

훌쩍이다가

어느새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사춘기의 문턱에 걸쳐 있던 나는

맞고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집이 비는 시간을 노려

몰래 들어가서 집을 뒤지다가


할머니가

이불장 안에 숨겨 놓은

옥수수를 찾아내

그대로 들고 다시 도망쳤다.


당장 내가 배고파서 먹은 건데

라는 생각뿐이었다.


맞은 게 억울했고

괜히 반항심이 올라왔다.


그렇게 옥수수를 훔쳐 들고

집을 나왔지만

막상 손에 들린 옥수수를 바라보자

발걸음이 멈췄다.


이걸

먹어야 하나

아니면 팔아야 하나

한참을 서서 고민하다


이걸 팔아버리면

정말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옥수수를 들고

농장밭으로 들어가

땅을 파고

그 안에 묻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 눈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밀짚을 쌓아둔 더미 틈에 몸을 숨기거나

풀 속에 웅크려 앉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버텼다.


배가 고프면

주변에 있는 풀을 뜯어 먹으며

혼자 꽃제비 생활을 이어갔다.


며칠이 흐르고

문득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농장밭으로 향했다.


손으로 흙을 파내자

그 안에 숨겨 두었던 옥수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문를 열자마자

아빠가 보였다.

거칠게 내뱉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어딜 갔다 온거야?"


순간 몸이 굳었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숨기지 않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했다.


옥수수를 훔쳤던 것

그리고 며칠을 밖에서 지냈던 것까지


아빠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내 손에 들려 있던 옥수수를 건네 받고는 말했다.


"이거 들고 가서 두부로 바꿔와라."


잠시 뒤

두부 두 모가 놓였다.


그날

우리는 그걸 둘이서만 나눠먹었다.

간도 없는 물 빠진 두부였는데

이상하게 따뜻했다.


입 안에 넣을 때마다

속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방 안에는

두부 씹는 소리만 났다.


아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건 비밀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할머니도 삼촌도 모르게

우리는 말없이 같은 편이 됐다.


꾸짖음도 아니고

용서도 아니고


그냥

투박하게 건네진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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