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죄책감을 삼킨다.
막내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친할머니 집, 우리 집, 고모 집
세 집이 차례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할머니는 본가를 팔아
우리가 지냈던 작은 창고 집으로 옮겨 갔다.
이제 그 좁은 공간에
할머니와 못난이 삼촌 가족이 함께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집을 팔았다.
바로 옆 동네의 허름한 집으로 이사했고
어느 날부터 외할머니와 이모까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빠는 집을 판 돈으로
먹을 것을 구하겠다며 떠났다.
엄마는 남은 살림을 붙들고 버텼다.
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돈이 나올 구석은 없었다.
여기저기 돈과 쌀을 빌리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버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결국
외할머니, 막내이모, 엄마, 나 그리고 동생
다섯 식구는 산으로 도망쳤다.
손에 쥔 건
작은 냄비 두 개, 숟가락과 그릇 5개, 다라이 하나뿐이었다.
우린 산에 올라 작은 오두막을 지어 숨어 살았다.
하필 비가 많이 오던 시기였다.
먹을 것도 챙겨 나오지 못한 채 올라왔으니
풀을 뜯어 먹으며 버텨야 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만
나중에는 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걱정됐던 엄마가
어디선가 쌀 200그램을 구해왔다.
다섯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 했다.
동생과 나는
오랜만에 먹을 밥을 기대하며
풀을 한 아름 뜯어왔다.
쌀 100그램에 풀을 가득 섞어 만든 풀죽
그날은 두 끼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를 곯는 일상은 계속됐다.
더 이상 뜯어먹을 것도 없어지자
우리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나와 동생을 먹이기 위해
빚은 계속 늘어났다.
쌀겨로 만든 빵도 먹었다.
벼 껍질을 갈아 만든 그 빵은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끌거렷다.
며칠을 굶어 배가 등에 붙은 상태인데도
도저히 목으로 넘길 수 없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삼켰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다른 기억은 희미한데,
배고픔만은 또렷하다.
정전으로
눈을 떠도 세상이 깜깜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동생과 나는
아우성치는 배를 부여답은 채
겨우 잠에 들었고
문이 열리며 엄마와 이모가 들어왔다.
"일어나 봐. 이거 먹어 얼른"
엄마가 손에 쥐여준 건 빵이었다.
어디서 외상으로 얻어왔다며
손바닥만 한 빵을 세 개씩 나누어 주었다.
늘 퍽퍽한 빵만 먹다가
달콤한 팥이 들어간
부드러운 빵을 맛보니
숨이 멎을 만큼 황홀했다.
어둠 속에서
빵을 꼭 쥔 동생을 바라봤다.
배가 고파
빵만 눈에 보였다.
나는 결국
동생의 빵 하나를
몰래 빼앗아 먹었다.
곧 들켰고
동생은 엉엉 울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정전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그때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둠속에서는
죄책감마저 삼켜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