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배운 생존이란

어둠은 죄책감을 삼킨다.

by AJ

막내삼촌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친할머니 집, 우리 집, 고모 집

세 집이 차례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할머니는 본가를 팔아

우리가 지냈던 작은 창고 집으로 옮겨 갔다.


이제 그 좁은 공간에

할머니와 못난이 삼촌 가족이 함께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집을 팔았다.


바로 옆 동네의 허름한 집으로 이사했고

어느 날부터 외할머니와 이모까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빠는 집을 판 돈으로

먹을 것을 구하겠다며 떠났다.


엄마는 남은 살림을 붙들고 버텼다.

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돈이 나올 구석은 없었다.


여기저기 돈과 쌀을 빌리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버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결국


외할머니, 막내이모, 엄마, 나 그리고 동생

다섯 식구는 산으로 도망쳤다.


손에 쥔 건

작은 냄비 두 개, 숟가락과 그릇 5개, 다라이 하나뿐이었다.


우린 산에 올라 작은 오두막을 지어 숨어 살았다.


하필 비가 많이 오던 시기였다.

먹을 것도 챙겨 나오지 못한 채 올라왔으니

풀을 뜯어 먹으며 버텨야 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먹었지만

나중에는 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걱정됐던 엄마가

어디선가 쌀 200그램을 구해왔다.


다섯 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

그래도 살려면 먹어야 했다.


동생과 나는

오랜만에 먹을 밥을 기대하며

풀을 한 아름 뜯어왔다.


쌀 100그램에 풀을 가득 섞어 만든 풀죽

그날은 두 끼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를 곯는 일상은 계속됐다.


더 이상 뜯어먹을 것도 없어지자

우리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나와 동생을 먹이기 위해

빚은 계속 늘어났다.


쌀겨로 만든 빵도 먹었다.

벼 껍질을 갈아 만든 그 빵은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끌거렷다.


며칠을 굶어 배가 등에 붙은 상태인데도

도저히 목으로 넘길 수 없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삼켰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다른 기억은 희미한데,

배고픔만은 또렷하다.


정전으로

눈을 떠도 세상이 깜깜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동생과 나는

아우성치는 배를 부여답은 채

겨우 잠에 들었고


문이 열리며 엄마와 이모가 들어왔다.


"일어나 봐. 이거 먹어 얼른"


엄마가 손에 쥐여준 건 빵이었다.


어디서 외상으로 얻어왔다며

손바닥만 한 빵을 세 개씩 나누어 주었다.


늘 퍽퍽한 빵만 먹다가

달콤한 팥이 들어간

부드러운 빵을 맛보니

숨이 멎을 만큼 황홀했다.


어둠 속에서

빵을 꼭 쥔 동생을 바라봤다.


배가 고파

빵만 눈에 보였다.


나는 결국

동생의 빵 하나를

몰래 빼앗아 먹었다.


곧 들켰고

동생은 엉엉 울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정전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그때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둠속에서는

죄책감마저 삼켜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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