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로 배를 채우다.
팍팍한 생활이 계속되자
엄마는 며칠 밤을 새운 끝에 결심했다.
"네 아빠를 찾으러 가야겠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길주역으로 향해 길을 나섰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곳에서 길주역까지 삼십 리
걸어서 세 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배고픔에 지친 다섯 식구가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동생과 내가 자꾸 뒤처지면
엄마나 이모, 외할머니가 번갈아 업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마침내 길주역에 도착했다.
길주역은
모든 길을 거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그 틈에는
제각각 사연을 가진 이들이
역 안 이곳저곳에서 자리 잡고 노숙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꽃제비'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날부터 우리도 꽃제비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역 주변을 떠돌았다.
해가 떠오르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지만
우리에게 갈 곳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되어도
밥 한 끼를 해결하지 못했다.
엄마와 이모는
아빠의 행방을 찾겠다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는 동생을 붙잡고
역 한켠에 남아 있어야 했다.
길주역에 도착한 뒤부터
외할머니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둘만 남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역 근처를 돌아다녔다.
주변을 대충 파악한 뒤에는
길주역 앞에서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장마당(시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안에서
구경하는 척 서성였다.
물건을 흥정하는 소리
냄비에서 김이 오르는 소리
기름 냄새와 사람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그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 무언가를 먹고 있으면
그 앞에 잠시 서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혹시 남은 걸 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었지만
결구 구걸을 해야 했다.
"저...조금만 주세요."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잠시뿐이었다.
운이 좋으면
먹다 남은 음식이
손에 쥐어졌다.
동생은 예전에 목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다시 도진 건지
좀처럼 낫지 않던 때였다.
얼굴은 바짝 마르고
눈은 퀭하게 꺼져
딱 봐도
아픈 아이였다.
사람들은
동생을 한 번 더 쳐다봤다.
그리고 그럴 때면
음식을 건네주는 손이
조금 더 쉽게 나왔다.
동생이 다 먹고 남긴 걸 집어 먹으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했다.
"아픈 동생 줘야지
네가 먹으면 어떡하니!"
나는 그저 동생이 남긴 걸 먹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만 먹으라며 타박하곤 했다.
억울했지만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오는걸
막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