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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 Mar 10. 2024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미움

 서른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됐다. 어머님은 4남매 중 남편을 가장 아끼고 의지하시는 것 같았다. 내 앞에서 계속 아들 자랑을 하셨다. 어머님은 자신이 바라시는 것을 솔직하게 다 표현하셨다. “며느리가 딸처럼 굴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면 ‘어머님이 먼저 딸과 며느리를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생각했다. “어느 집 며느리는 시어머니한테 이렇게 해줬다. 저렇게 해줬다.”라고 하시면 ‘다른 집 시어머니들이 며느리한테 하시는 거는 안 보이시나 봐요?’ 반문하고 싶었다. 누가 며느리를 그렇게 시집살이시킨다고 흉보시면 ‘왜 남의 허물은 보시면서 자기 허물은 못 보실까?’ 싶었다. 어머님의 말씀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서운한 점이 몇 가지 있어 말씀하시겠다고 하셨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저렇게 자기 유리한 쪽으로 왜곡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섭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어머님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계셨기 때문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나에게 “너도 말해봐라.”라고 하셨다. 내 입에서 “어머님은 어떻게 어머님 입장에서만 생각하세요? 어머님은 서운한 점을 나열이라도 하시지만 저는 너무 많아서 나열도 못합니다.”라는 말이 불쑥 나와 버렸다. 어머님께 처음 하는 반항이었다. 갑자기 시누이가 방에서 나와 어른한테 그 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몰아세웠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것보다 시어머니가 친정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자식교육 잘못 시켰다고 뭐라 하실까 봐 걱정이 됐다. 바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런 나를 남편이 그냥 집에 가자고 하면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 걸을 수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다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날 비춰주었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받게 되었다. 밝고 따뜻한 어떤 것이 내 안에 확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랑으로 품어라.’ 

‘사랑으로 품어라.’  

 

 갑자기 어머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아드리고 손잡아 드리고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부탁했다. 그리고 바로 기차표를 샀다. 기차 안에서 나는 계획을 세웠다. 첫째, 어머님을 보면 안아드린다. 둘째, 근처 명소를 어머님께 구경시켜 드린다. 셋째, 맛있는 걸 사드린다. 넷째, 손을 꼭 잡고 같이 잔다.      

 내가 집에 들어섰을 때 “네가 웬일이냐?”며 어머님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어색하신지 어머님은 계속 왜 아이들은 안 데려왔냐고 하셨다. “아이들 데려오면 어머님 저 안 쳐다보실 거잖아요.”하면서 어머님을 안고는 없는 애교를 부렸다. 

 근처에 축제를 하는 곳이 있으니 같이 나가자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내키시지 않아 보였지만 못 이기시는 척 같이 나가 주셨다. 말없이 어색하게 걸었고, 저녁을 먹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마지막 계획을 실행했다. 어머님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주방에서 뚝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머님은 기차에서 먹으라며 찰밥과 조미김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어머님께 메시지가 왔다. 어머님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셔서 한글을 환갑이 넘은 나이에 배우셨다. 어설픈 글씨와 맞지 않는 문장부호이지만 정성껏 꾹꾹 눌러쓰신 종이를 사진으로 보내 주셨다.     


미안하다.

며느라 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고마워


 아무도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오만이다. 스스로 변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스스로 변한다. 사랑은 심판하지 않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그런 걸 구분하지 않는다. 다 받아들이는 게 사랑이다.


 나는 나만의 틀이 있었다. 이건 옳고 저건 틀린 것, 이 건 좋고 저 건 나쁜 것, 이건 이기적이고 저건 무례한 것. 이렇게 말이다. 아토피가 완치되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영성과 마음공부를 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그어놓은 선과 어머님이 그어놓은 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자의 기질, 취향, 삶의 경험을 통해 설정된 자기만의 알고리즘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어머님이 가여웠고 고된 삶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내가 내 고집을 보고 그 틀을 깨고 나오니 어머님도 변하셨다. 시어머님은 나에게 ‘용서'라는 큰 가르침을 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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