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결혼 후 시간이 있는 한 아내가 참여하는 공연을 관람했다. 대개 수도권에서 공연을 했지만 간혹 지방에서 공연을 할 때도 있었다. 지방 공연을 따라갈 때는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결혼하기 5개월 전, 아내는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개최되는 판소리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흥미롭게도 지역에 있는 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체육관 밖 공터에서는 천막을 치고 지역 특산물이나 음식 등을 판매하며 참가자나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대회의 심사위원들은 판소리계의 유명한 명창들이었다. 그들은 제자가 판소리 경연대회에 참가할 경우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제자에 대한 심사 시 기권을 했다. 이날 나는 아내가 무대 위에서 판소리를 부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날 이후 국악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내가 참여하는 공연을 관람했고 공연이 끝나면 아내의 지인들과 인사를 했다. 그중에는 국악인이 많았다.
민요는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곡들이 있어서 듣기에 비교적 익숙했으나 판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판소리는 나에게 낯선 음악처럼 느껴졌고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어떨 때는 집에서 판소리 연습한다고 흥얼흥얼 거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소음처럼 느껴졌다.
판소리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소리꾼이 종종 관객들에게 추임새를 유도했다. 흥겨워진 관객들은 얼씨구 좋다 잘한다 등의 소리로 화답했다. 클래식 음악감상처럼 조용히 듣는 것에 익숙한 나는 판소리 공연의 이러한 관객과의 소통 행위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꾼이 부르는 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딴생각만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겠는데 저분들은 뭐가 재밌다고 소리를 지르지?'
판소리 공연을 할 때 관객석에서 시끄럽게 추임새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내는 나의 이런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었다. 그러면서 판소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듣기에 이해하기 쉬운 공연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판소리 공연을 보러 서울 돈화문 국악당에 갔다. 판소리 명창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국악 공연은 클래식 공연에 비해 초대권이나 무료 공연을 많이 했다. 이날도 아내가 초대권을 얻어 공연 관람을 했다.
공연장 내에는 아내의 지인들도 관람하러 왔다. 관람하러 온 아내의 지인들은 대부분 국악인이었다. 하지만 일부 국악 동호인도 있었다. 그중에 유난히 판소리 명창이 판소리를 부를 때 밝은 표정을 지으며 흥얼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내가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판소리 연구모임의 회원이었다. 판소리 연구모임은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악인이 참여했다. 이 모임에서 공부하는 내용은 판소리에 관한 학술적 내용과 실기를 균형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 몇 안 되는 국악 동호인 김 씨였다.
"저분은 판소리의 어떤 점이 좋아서 저렇게 흥얼거릴까요?"
아내에게 물어봤다. 공연 중에 혼자서 계속 흥얼거리는 김 씨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서 판소리 명창의 공연을 보면서 신난 모습으로 판소리를 흥얼거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명창의 소리를 따라 부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겠어요"
아내는 김 씨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김 씨가 판소리 공연 중에 좌석에 앉아 관람하면서 혼자 흥얼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행동이 더욱 궁금해졌다.
공연시간은 비교적 길어서 중간에 15분간 휴식시간이 있었다. 아내는 휴식시간에 공연장 앞 쪽에 앉아 있는 김 씨에게 다가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10분쯤 지나자 아내는 김 씨와 만난 후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명창이 부르는 판소리 리듬이 좋아서 따라 하는 거라네요"
'리듬?'
김 씨가 공연 중에 혼자서 흥얼거리는 이유는 판소리의 리듬이 좋아서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생각해 보았다. 소리꾼 혼자서 수십 분 동안 부르는 것이 판소리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재미가 있을까.
그런데 서양음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양음악인 오페라를 관람했을 때 미리 해설을 읽거나 듣지 않으면 공연을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지 공연이 재밌었다고 느낀 이유는 공연 분위기, 가수의 리듬과 열정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판소리가 좋아 추임새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