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와한국의대학원에 대해 대화를 했다. 대화 내용 중 그는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비싸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돈 없이는공부하기 어렵다는말이었다.
그의 말에 동의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그나마 돈벌이가 괜찮았는데 퇴사하고 나니 대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꽤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한 학기에 수백만 원 하는 등록금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은 후 대학생 때 나는 참으로 편하게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H대 교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직계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어서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과외와 대학입시학원을 다니는것이 불법이었다. 하지만1980년대 초반부터시행되었던과외 금지가 대학교 2학년 때 해제되었다. 그래서 과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교 3학년에 복학했을 때는 중고등학생에게 과외를 가르치는 학우들이있었다. 용돈을 벌고 싶거나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학우들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일부나 전부를 마련했다. 하지만 나는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용돈이 필요해서 달라고 하면 용돈을쓸 만큼 주셨다. 그래서 굳이 아르바이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와 생각이 달랐다. 아버지는 때때로 내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벌어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돈의 소중함과 부모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아버지가 너무 돈을 아끼는 구두쇠라고 집에 충분히 여유가 있는데 굳이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할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당시에우리집재정관리는 어머니가 하고 있었다.어머니는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그 덕에 대학교 4년 동안 편하게 학업을 했다.
대학교 신앱생 때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자 경험 삼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방학 때캠퍼스를 걷다가 우연히교내 게시판에 눈에 띄는 문구가 보였다.
[H대학교 재학생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모집]
무더운 7월의여름날이었다.H대 캠퍼스 학생회관 근처 게시판에 적힌 글이 눈에 띄었다. 2학년이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어 호기심에 한 번 해보고 싶다는생각이 들었다.그래서 학교 본관 행정실의 아르바이트 신청코너로 찾아갔다. 행정실 직원은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서울이라고 말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학교들 몇 군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학교를 신청하라고 말했다.
내가 신청한 학교는 서울 성북구 미아리고개에 있는 K상고였다. 그는 내가 신청한 학교에 가면 자격증 시험감독관 보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K상고는 우리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실업계 남녀공학이었다. 신청할 때 그에게 오전 시간에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하는 날이 되었다. 미아리고개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있어서 올라갈 때약간 땀이 났다. K상고 정문을 지나가니 교복을 입은 몇 명의 남녀 학생들이 보였다. 시험 시작하기 전에 감독관들이 모여 회의와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다. 진행하는 분은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교실에서 감독관 보조 역할이나 복도 감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나 보고는 복도 감독을 하라고 말했다.
복도 감독은 복도에서 서 있으면서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시험장소를 못 찾은 학생에게 장소를 안내한다던지 시험 보고 나가는 학생이 떠들면 조용히 시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복도에 서 있으니 내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오전 시간 동안 복도에 서 있다가 귀가했다.
요즘과 다르게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아르바이트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디지털 환경도 아니었다. 정보를 찾으려면 지인을 통하거나 학과사무실, 행정실 등을 돌아다니며 알아봐야 했다.대학생 때 반나절 했던 아르바이트를 남들에게 아르바이트했다고 말하기가 좀 쑥스럽지만 나에게는 첫 아르바이트 경험이라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