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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Jan 03. 2024

초보강사 도전기

눈높이란 상대방 기준에 맞추어 준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가르쳐본 적이 거의 없는 나는 교육현장에서 중요시되고 있는 눈높이 교육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직장, 직업훈련기관 등 교육 관련하여서 항상 교수나 강사로부터 강의를 듣는 피교육자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8년 전의 일이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어서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한 중장년 드론 창업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 교육에서 같이 교육을 받는 동료 교육생들을 알게 되었다. 교육생들 중에서 과거에 영업을 해왔었다는 영업맨이 있었다. 그는 일부 교육생들에게 창업교육을 수료한 후 교육사업을 해보자고 말했다.


그는 중장년 창업교육 기간 동안 나와 조금 친하게 이야기 나누던 교육생인 A형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는 A형님에게 교육사업에 대해 먼저 제안한 후,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에게도 제안을 했다. 그가 말하는 교육사업이란, 그가 대표로 학교나 교육청에 가서 영업을 하여 교육을 수주한 후 같이 학교에서 강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주제로 강의할 거냐고 물어보니 '드론(Drone)과 아두이노(Arduino)'를 주제로 하여 강의하자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아두이노를 알게 되면 드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해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생소한 일이기 때문에 거절할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딱히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아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중장년 창업교육이 끝난 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은 경기도의 3개 중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 요청이 들어왔는데, 내가 아두이노에 대한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아두이노를 강의하고 A형님이 드론에 대해 강의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아두이노가 뭐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보니 조그맣게 생긴 전자 보드로서 교육, 예술, 산업 여러 분야에서 매우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단어는 들어봤지만 만져본 적도 없는 제품에 대해 중학생들에게 설명하라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영업맨과 약속을 했고 강의 대상이 중학생들이라 수준이 높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집에서 아두이노 키트를 인터넷 사이트로 구매하고 설명서대로 테스트해 보기 시작했다. 설명서대로 테스트해 보니 아두이노가 잘 작동하였다.


그런데, 한 번 테스트해 보는 것과 남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피당하지 않으려면 파워포인트로 강의 교안을 작성해야 하고 발표 연습을 해야 했다. 또한, 내가 목소리가 작은 편인데 중학교에 마이크가 없을 수도 있으니 마이크도 준비해야 했다.


학생들을 대하는 것에 서툰 나로서는 세 군데 학교가 모두 쉽지 않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는 경기도에 있는 A중학교였다. A중학교 정보를 알고자 인터넷으로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소프트웨어 교육 선도학교였다.


'소프트웨어 교육 선도학교?'


드론을 움직이게 하는 부품에 아두이노가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아두이노가 작동하려면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아마도 A중학교는 소프트웨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학교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의날이 되었다. 학교 정문 앞에 다다르니 '소프트웨어 교육 선도학교'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A중학교는 정보과목 담당교사의 눈높이가 높을 것 같았다. A형님과 영업맨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초보 강사인걸. A중학교 수준에 맞게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두 군데 학교에서 했었던 내용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방과 후 수업이라 드론에 관심 있어하는 여러 학년의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정해진 일정은 첫째 날 강의가 아두이노이고, 둘째 날 강의가 드론 강의였다. 나는 첫째 날 아두이노 강의를 하게 되었다. 실습도 있어 혼자 진행하기는 힘드므로 영업맨이 보조강사로 도와주었다.


A중학교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는 어떨까? 해보지 않았으니 가늠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이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만큼 수업 분위기는 산만할 것 같다는 개인적 생각만 들뿐이었다. 수업을 하기 전 정보과목 담당교사가 이론시간이 길면 학생들이 지루해하니 이론보다 실습시간을 길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영업맨이 알려줬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준비한 파워포인트 내용대로 이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가자 학생들이 내용이 재미없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조강사로 참여하는 영업맨이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집중해 줄 것을 요청했다. A중학교 정보과목 담당교사는 첫 시작할 때만 와서 보더니 이후로 컴퓨터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습시간의 비중을 높여달라는 정보과목 담당교사의 요청대로 이론시간을 줄여서 진행했다. 대충 보더라도 뭔가 해보려는 학생들과 무관심한 학생들이 구분되어 보였다. 아두이노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컴퓨터 C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으므로 관련 내용도 설명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실습시간에 학교에서 C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고 있으며, 선생님이 내 준 숙제를 해야 한다며 숙제에 대한 해답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정보 동아리 같은 데에서 배우면서 담당 교사가 숙제를 내 준 듯 보였다.


문제를 봤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떻게 프로그래밍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C프로그래밍에 대해 아냐고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대답하곤 했다. 회사에서는 비주얼 베이직(Visual Basic) 개발툴만 사용해 봤는데, 다른 개발툴은 배우기 싫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A중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C프로그래밍에 대한 왕기초 내용일 뿐이었다. 조금만 응용해서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을 못 할 것 같았다. 그 학생이 물어보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니 해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도 잘 몰라. 모르겠는걸'


이런 대답을 하고 싶었다. 강사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질문은 수업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 학교 담당 선생님에게 물어봐요"

  

수업 내용과 관련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정당한 답변을 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강사로서의 내 존재감이 작아 보였다. 아무튼 아두이노를 이용한 여러 가지 실습(LED  켜기, 피에조 스피커, 모터 제어 등)을 마쳤다. 


둘째 날 강의는 A형님이 교실과 학교 운동장에서 드론 실습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확실히 뛰어놀며 실습하는 드론 실습을 좋아했다. 드론을 조종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드론을 쫓아가느라 우왕좌왕했지만 표정은 신나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정보과목 담당교사와 강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잠깐 나누게 되었다. 정보과목 담당교사는 우리가 열심히 했지만 학교 측에서 원했던 내용에는 미치지 못한 일반적 강의 내용이었다고 평가했다. 학교 측에서 원하는 눈높이를 못 맞춘 것이었다. 


학교에서 나온 후 A형님, 영업맨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영업맨은 다음 기회가 생긴다면 더 열심히 준비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A형님은 현시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강사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가끔씩 강의하는 것은 생업으로 삼기에 돈을 별로 벌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할 수 있는 부업 정도로만 생각될 뿐이었다. 이렇게 나의 초보강사로서의 도전은 끝났다.


      [사진. 아두이노 우노(Arduino 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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