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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Dec 21. 2023

통근버스

새벽에 눈이 내렸다. 아침에 창 밖을 보니 청년 몇 명이 와서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내가 나가서 우리 집에 쌓인 눈을 쓸어야 하는데, 오늘은 JTBC 방송국 드라마 촬영이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집 앞 빌라 주차장에 촬영 관련 직원들로 보이는 청년 몇 명이 먼저 눈을 쓸고 있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것이 크리스마스, 새해맞이, 설날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에게는 통근버스에 대한 기억이 있다. 27년 전,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발령받은 근무지는 경기도 이천시의 공단 내에 있는 제조회사 IT실이었다. 이천시에 있는 제조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우리 집은 서울에 있었으므로 어떻게 이천까지 다니겠냐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그런 질문에 다행히 회사 통근버스가 있어서 출퇴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에게 서울로 매일 출퇴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버스 밖에 없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이 장롱면허라 운전을 하지 못하였고 경기도 이천시에는 전철이 다니지 않았다. 서울까지 택시 비용은 비싸서 매일 타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의 경우 회사가 중소도시에 있어서인지 배차시간 간격이 길고 일찍 종료되며 탑승 위치가 회사에서 떨어져 있어 번거로웠다. 


대기업이라 그런지 타 지역 출신 직원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는데, 통근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에 사는 직원들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내 집은 서울에 있었므로, 나는 기숙사 입주가 불가능했다. 다행히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회사는 통근버스를 운행하였다.


회사 통근버스는 서울의 경우 양재역 방향, 잠실역 방향, 사당역 방향, 노원역 방향, 구파발역 방향 등으로 가는 여러 코스가 있었다. 우리 집은 서울 잠원역 근처여서 압구정역이나 고속터미널역에서 탑승할 수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허둥지둥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준비물을 챙겼다. 그리고 통근버스 탑승 위치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면 이미 몇 명의 직원들이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면 경부 고속도로나 중부 고속도로에 눈이 쌓이고 차들이 서행하여 교통체증이 심해지곤 했다. 내가 탑승했던 통근버스도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럴 때엔 차 속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해도 시간만 지나갔지 여전히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차창 밖을 바라보면 고속도로 옆 설경(雪景)이 눈에 들어왔다. 


신입사원 때는 주 5일 근무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이어서 토요일에도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토요일 출근날에는 통근버스들이 회사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떨 때는 회사에 오전 11시에 도착해 1시간 어영부영 보내다가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통근버스가 늦게 도착하는 경우는 탑승했던 직원들이 지각한 것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통근버스로 출퇴근한 지 일 년이 넘어가니 몸이 피곤해서 회사 근처에서 생활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는 매일 통근버스로 출퇴근하지 않았다. 오늘 같이 새벽에 눈이 온 날에는 눈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가끔은 경기도 이천시까지 통근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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