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연구하는 모임 중에 선영악회라는 단체가 있다. 이 모임은 판소리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남다른 애정을 가졌으나 병으로 타계한 고(故) 김선영 박사의 뜻을 잇고자 2015년에 창립한 단체이다. 이 모임의 주요 활동은 판소리 전공자 등 국악인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판소리 감상을 하며 전승이 끊어진 판소리의 복원과 계승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아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모임이 제한적이기 전까지 이 모임에서 수년 동안 판소리를 공부하고 공연에 참여했다. 하루는 아내가 공연에서 판소리를 부르기 위해 집에서 대본을 보고 연습하고 있었다. 대본에 적혀 있는 판소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가가 물어봤다.
"대본에 적힌 내용이 한국말이긴 한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내용을 보니 분명히 한글인데 이해가 쉽지 않은 단어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었다. 옛말이라고 해야 할까. 고어(古語)로 보이는 글자들을 아내는 혼자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여기 보세요. 아래에 현대어로 해석해 놓은 내용이 적혀 있잖아요"
아내는 손가락으로 대본 아래쪽에 있는 각주(脚註, footnote)를 가리켰다. 아래쪽의 각주를 보니 옛말을 해석해 놓은 듯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용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러한 옛말을 외워서 판소리로 부른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따라 회원들을 알게 되고 공연을 보거나 MT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선영악회의 특징이 있었다. 단체의 명칭의 뒷 두 글자가 학회가 아니라 악회로서 실기를 중시한다는 점이었다. 즉, 실기자들인 판소리 소리꾼들은 모임에 참여하여 자주 판소리를 불렀다. 또한, 옛 명창의 판소리 감상이나 고음반(古音盤) 공부를 통해 판소리 역사를 배울 수 있었다.
판소리는 원래 12마당이었으나 안타깝게 현재 5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만이 전해지고 있다. 전통음악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국내에 이런 모임이 계속 생겨 후대에 전승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