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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성립하지 않는 시

by 벽난로

예전에 두줄짜리 짧은 시를 쓴 적이 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에 꽂혀 가급적 짧게 쓰기.

긴것보다 시크해보인다. 다시말해 '있어보인다.'는 생각에 말이지


길면 왠지 주저리대는거 같고 구구해보인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하여 짧게 두줄. 예를 들면 ..


짜장면

출발했다고?

출발할 거면서

(끝)


이런식이었다.

아 그 전에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작가님들은 혹시라도 기분 나빠하시지 말기를 바란다. 그냥 배고픈 얼라의 땡깡이라고 생각해주시라


암튼 배달전화를 건지 한참 된듯 하나 아직 음식이 당도하지 아니한 상황이 되면 부모님은 다시 전화를 하시곤했었지. 그러면 "출발했어요." 답

그러면 피식 웃으시던 부모님. 그때는 왜 웃으시지?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나도 커서 직접 주문하고 확인전화를 걸면서 또 그런 상황이 여러차례 반복되면서, 출발했다는 시간 대비, 해당식당의 위치, 실제도착시간 등의 데이타가 쌓이면서 어느새 지레 피식 웃곤 하는 나 자신을 보게된 것이었다.


작품에는 산고가 따른다는데 위의 짧은 두줄시에도 내 나름의 산고 아니 굶주림을 겪은 아고(餓苦)가 그 바탕에 있었던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아고끝에 나온 작품일진댄, 아쉽게도 제목에 쓴대로 지금은 성립하지 않는 시이다.


이제는 전화를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 앱을 보면 배달 출발여부, 예상시간이 버젓이 나오기에 굳이 전화씩이나 해서 상황을 파악할 필요 자체가 없게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파트 철문에 붙여놓던 자그마한 전화번호 자석들도 다 없어진거 같다. 좋은건가?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고 손가락 따닥하면 원하는 정보습득이 용이한 장점이 있겠다. 그러나 한편 "저 혹시 군만두 서비ㅅ..", "아유 보내드려야죠~" 하던 밀당 아닌 밀당, 네고 아닌 네고, 구걸 아닌 구 .. (아 이건 아닌가)

그런 것들이 없어진 아쉬움이 살짝 든다는거다.


지금 전화주문하는 건 딱하나. 단지내 치킨 주문할 경우가 유일하다.

어디 예전의 그리움을 좇아 괜히 치킨 주문하고, 확인전화라도 한번 해볼까나?


ㅡ일단 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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