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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 (1)

by 벽난로

예전 2021. 8. 20. 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었다.

부랴부랴 관련 엽서와 사진을 모아 자료를 만들었고

우정사업본부가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기념우표 63만장을 발행한 것이다.


聖은 천주교의 성인(聖人)을 뜻하는 것으로 ,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덕행을 갖춰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된 분들로 로마 교황청에서 철저한 심사와 숙고를 거쳐 '시성'을 하게된다.


성인을 그릴 때 머리 뒤 동그란 원을 그리게 된다. (아래 보이시나요?)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도 지정되신 김대건 신부.

유네스코인물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3번째 지정되신거라고...

(앞에 먼저 지정되셨던 두분은 허준 그리고 정약용)


이 김대건 신부가 성인으로 시성되신 것은 1984년.


1984년이라..


때는 바야흐로 1984년 5월 3일 김포공항....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방한.

그리고 그 유명한 땅키스...


거룩한 순교자의 땅에 도착해서였다는 말씀이 있으셨다.


당시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 이상의 신자들이 운집했었고,


참고로 100만명이 모인 저 여의도광장은 지금은 김포, 인천 공항으로 옮겨가기전 원래 공항이 있던 곳이라 장소는 무지 넓음.


1984년에 교황이 방한한 것은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그렇다면 200년전인 1784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천주교 창립의 해를 그때로 잡는지 ?


바로 이승훈(1756~1801)이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북경에서 첫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세례받은 신자가 된후 귀국한 때가 바로 1784년.

북경에서 첫 세례받던 장면

이때가 한국 천주교의 시작인 것이고,

그 200년 후인 1984년에 요한바오로 2세가 이때 맞추어 오신거였다.

교황님 한국에 계시는 동안, 한국 103위의 순교자들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성인 103위

103위의 성인은 가나다 순으로


성녀 고순이 바르바라 (1798~1839),

성 권득인 베드로 (1805~1839),

성녀 김아기 아가타 (1790~1839),

그리고 13살의 어린 성 유대철 베드로 (1826~1839),

정약용의 조카 성 정하상 바오로 (1795~1839),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1805~1839)등이고


원래 이러한 시성절차는 로마 바티칸 내에서 진행하는게 원칙이라서 먼 타국에서 하는 것 자체가 당시 엄청난 파격이었다. 그리고 위 그림의 가운데에 바로 이번 우표의 주인공,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보인다.


한편 교황님은 한국 천주교의 시작은 전세계 카톨릭 2000년 역사상 그 유래가 없다고 역설하시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일반적인 전교절차인 선교사들의 전파가 아닌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점 !


쫓아다니며 믿으라 믿으라 해도 안믿는데, 안믿으면 죽인다고 해야 될까말까인데.... 스스로 종교인이 됬다는 건데, 그게 된다고? 가능해 ?


이 점에 대해서는 성조 이벽을 말씀드리게 되는데,


천주교의 자생적 출발이란 것이 :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서 수학하던 이벽이 당대 쟁쟁한 양반자제들을 모아서 천주교에 대한 강학을 이끌었었고, 이승훈을 설득하여 세례받아오게 하는 등 천주교 자생 공동체를 만든 분... 성조(聖祖) 광암 이벽.


이벽을 필두로, 정약용,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등

10~20대 약관의 내로라 하는 양반집 자제들.

오로지 유교가 절대규범인 폐쇄된 조선시대에 어찌 이들 유학자들이 서양의 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


한국천주교의 발상지....

경기도 광주 소재의 천진암.

경기광주 우체국 소인에 의미를 두어보고..


이때 천주교는 학문인 천주학, 서학 등으로 불렸는데, 바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이태리의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가 조선에도 큰 영향을 주었었다.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이탈리아인 마테오리치의 호는 서강(西江).

(국내에 이 이름의 대학교도 있죠)


유교의 상제 개념과 대비하여 서술한 하느님에 대한 참된 토론.... <천주실의>.


이탈리아인임에도 중국어에 능통하고 한자로 책을 저술하고 중국땅에 묻혔던 그분, 그래서인지 중화권, 유럽권 등에 우표도 많이 나오고.


이와 같이 자생적으로 퍼진 독특한 한국 천주교..


그러던 1821년 충남 당진의 솔뫼..

어느 한 집안에서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게 되는데...

솔뫼의 어느 밤의 시작과 끝...


솔뫼... 이름대로 소나무가 많은 그 곳.

얼마전 천국으로 가신 교황 프란치스코 1세, 2014년 방한 당시 솔뫼 김대건 생가앞에서 기도하는 모습.


이때 교황님 뒤에서 지근 수행하시던 한 분이 계셨는데,

당시 바티칸 로마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기사의 주인공 유흥식 라자로 주교 (전 대전교구장)

이 분 말씀을 짧게라도 드리려는 것은 이번 우표와도 관련이 되어서인데,


1951년에 논산에 태어나고, 6.25전쟁통에 아버지를 잃고 성장하여 어려운 가정형편상 장학금을 주던 천주교계 논산 대건(!)중학교로 진학한 후, 당시 김대건 신부에 대해 알게되면서 천주교 세례를 받고, 이후 신부가 된후, 이곳 솔뫼성지의 주임신부로 실제 부임하시기도 하셨고, 늘상 김대건 신부를 모델로 하신다던 분.


기회가 닿아 지근에서 몇번 뵈었었는데, 아이와 같은 미소가 마치 "나 하느님과 결혼해서 정말 기쁘다." 말씀하시는 듯한 분.

당최 뭐가 그리 기쁘신지 ㅎㅎ

얼마전 임무수행을 위해 바티칸으로 부임해서 떠나셨고 현재 성직자부 장관으로 재임중.

프란치스코1세 선종 후 새로운 교황을 뽑을 때, 다크호스 차기 교황 후보중 하나로도 현지에서 보도되었던 분이기도 하다. 암튼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고요^^.


여기에서 아래 분 말씀을 드리게 되죠.


바로

15세의 어린나이에 66세 영조와 혼인을 맺었던 조선역사상 가장 큰 나이차의 주인공 정순왕후...


(순하던 여배우들도 이 역만 맡으면 표독한 표정으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는...)


정조 임금은 생전에 천주교에 우호적이었으나, 1800년 정조임금이 승하하자마자, 즉위한 11세의 어린 순조 대신 수렴청정을 하며 조정의 실권을 틀어쥐게 된 정순왕후.


기다렸다는 듯 이듬해인 1801년 신유박해를 필두로 오라버니등 외척세력들과 함께 대대적인 천주교인 박해에 나서는데...


그후 크고 작은 박해 속에 김대건 신부는 가족을 따라 고향 당진을 떠나 용인 은이 마을로 이주하게 되고.

그냥 신앙을 버렸다면 대대로 살아온 곳을 떠날 필요가 없을 터인데 !

은이성지... 은리(隱里)..

이름 자체가 은밀한 마을이란 뜻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하나둘 모여 형성된 교우촌이었고.


바로 이곳 은이에서 세례를 받은 16세 청소년 김대건.


그리고 다른 두 젊은이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뽑혀 16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마카오로 가게 되는 세 청소년들 !

엄청난 대장정이다


한국-마카오면 비행기로 한 5시간 되려나

아니지 당시엔 비행기가 없으니 배로 2-3주면 가려나?


그러나 당시 걸어서 걸어서 생사의 여러 고비들을 넘긴 끝에 6개월만인 1837년 6월에 마카오에 당도하고...

6일만 걸어도 죽겠을텐데 6개월을 ?


무엇이 저 16세의 어린 젊은이들을 이끌었을지 !



아래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한 마카오의 성바오로 성당. 건물은 모두 불타고 앞면만 남아있는데.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도착하기 1년전인 1836년 화재로 이미 건물은 다 타버린 후였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보는 같은 장면을 김대건 신부 일행도 보셨을 거고...

마카오 신학교에서 라틴어, 신학, 철학, 지리, 역사,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아래는 그 신학교 바로 앞에 성안토니오 성당이 있고, 그곳에 김대건 신부 목각상이 있다.

이때, 같이 유학갔던 3분 중에 최방제 신학생이 이듬해 불의의 열병으로 그만 세상을 뜨시게 되는데.....


(2)편에 이어진다.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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