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환자실에는 환자를 위한 화장실이 없다.

by 남경훈

내가 근무하는 중환자실에는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소변줄 (foley catheter)를 삽입하고, 대변은 기저귀를 이용해야 한다. 의식이 없는 환자들은 대소변을 의료진에게 의지해 처리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 없지만, 회복 과정에서 의식이 되돌아오거나 처음부터 의식이 있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곤란한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종종 이 상황을 내 입장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의식이 명료한 상황에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화장실이 없어서 기저귀나 간이용 양변기를 사용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처리를 타인이 해야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곤란함과 수치심이 느껴진다. 나는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중환자실에 처음 입실한 환자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 "여기에서는 환자용 화장실이 없습니다. 침상에서 해결하셔야 합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때 그들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읽혀진다.


미국의 의학 드라마를 보면 중환자실이 대부분 1인실로 되어 있다. 내가 내과 수련을 했던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도 11개 병상이 모두 1인실이었으며, 한쪽 구석에 변기가 갖춰져 있었다. 환자들은 상태가 허락된다면 혼자서 사용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사용을 할 수 있었다. 낙상을 우려하여 중환자실 내부는 CCTV로 모니터링되었고, 담당 간호사가 항상 주변에 상주해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환자실의 공간은 여전히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다. 코로나19, 독감, 결핵 같은 호흡기 감염병이 아니라면, 1인실 사용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1인실에도 화장실이나 변기가 없다. 한국의 중환자실은 대개 10개 이상의 침대를 한 공간에 일렬로 혹은 병렬로 배치시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게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성은 환자의 이상 징후들을 빠르게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환자실 환자는 언제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크다. 내 옆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심정지가 발생하여 심폐소생술이 진행되는 모습, 내 앞에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점점 악화되는 과정, 그리고 결국 임종을 맞이하는 장면까지도 환자들은 고스란히 목격해야 한다. 가족들이 곡소리를 내며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환자들의 표정은 어둡다. 이는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화면 캡처 2025-08-26 122924.jpg

사진 1. 우리나라의 중환자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공간 구성의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감염 관리 측면에서 다인실 구조는 명백한 단점을 지닌다. 바로 옆 병상이 어떤 감염병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채,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 법적 격리 대상이 아닌 질환이라도, 옆 환자의 기침과 설사로 인해 병균이 전파될 위험은 존재한다. 특히 항생제 내성균의 증가가 다인실 병상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처럼 중환자실을 모두 1인실로 만들지 못할까? 안에 화장실도 설치하고. 가족들도 상주하면서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며 자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상 중환자실의 시설 기준은 병상 간 거리 2m, 1인당 병실 면적 15m² 이상이다. 2m 거리라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을 정도다. 어제까지 내 옆에 누워 있던 환자가 오늘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면, 그 장면을 지켜보는 환자의 심정은 어떨까? 실제로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이 "지옥 같았다"라고 표현한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병원 경영의 측면에서 1인 중환자실은 장점이 없다. 현재의 의료법으로는 1인실인 격리병실 또는 음압격리병실은 병상 10개당 1개 이상만 갖추면 된다. 물론 화장실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준 또한 없다. 기존 한국의 중환자실을 다른 선진국처럼 모두 1인실로 바꾼다고 가정하면, 1인병실 한개 당 기존 병상 3개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에 30명의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던 공간에서 10명밖에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병원의 경영 측면에서 불리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는 의료진, 환자 어느 누구도 이러한 한국 중환자실의 열악한 공간에 대해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평생 중환자실을 방문할 일이 거의 없고, 중환자실에서 마주할 경험들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설령 본인이나 가족이 중환자실에 입원하더라도 대부분 환자가 위중해 불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중환자실에는 화장실 이용 제한 외에도 수많은 제한이 있다. 핸드폰 사용의 제한, 신체의 자유의 제한(신체보호대), 병실 밖 이동 제한 같은 조치들에 대해 환자나 가족들이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기 때문이라는 설명 앞에서는 대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모든 중환자실 병상이 반드시 1인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중환자실에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은 독립성, 자율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밥을 먹고,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설령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환자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이런 면에서 아직 후진적이라고 생각한다. 효율만을 강조해 온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환자들은 마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상품이 만들어지듯이 처리된다. 나 또한 가끔은 거대한 공장의 부속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가장 효율적인 치료를 받고 안정되면 일반 병실로 보내지는 과정이 마치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환자와 가족들과 많은 소통을 하려고 노력한다. 단순히 의료서비스의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자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화장실은 아직은 내가 일하는 중환자실에는 없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모든 중환자실에 환자들이 도움을 받아서라도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생기기를 바란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