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2번, 한사람만 가능해요.

by 남경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병문안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누구나 쉽게 환자를 보러 갈 수 없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병원이 방문객의 면회를 아예 금지하거나 인원과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친지나 친구가 입원했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아픔을 나누던 예전의 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다.


한국의 중환자실은 코로나 판데믹 이전부터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경험한 모든 한국의 중환자실은 면회시간이 규칙적으로 운영되었다. 대부분 오전 오후 하루 두 번, 30분 정도였다. 그 시간 외에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환자는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다. 또한 면회는 대부분 한명만 가능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감염 관리 때문이라고 설명되었지만, 사실 한꺼번에 많은 면회객이 방문하면 통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모든 보호자들이 한꺼번에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그 시간은 의료진에게 가장 바쁜 시간 중 하나다.


현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전공의 수련을 받았던 미국 병원의 중환자실에는 면회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가족들이 언제든지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방문객이 오면 간호사가 그들을 환자의 병실로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가족은 한두 시간가량 머물다가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방문할 때마다 설명을 듣기 위해 담당 의사를 찾지는 않았다.


한국의 중환자실에는 '임종기 면회'라는 개념이 있다. 환자의 임종이 임박한 경우 면회 제한을 풀어 가족들이 충분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임종이 너무 급작스럽게 찾아오면 임종기 면회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혼자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깝다.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니 말이다.


‘임종기’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명시된 임종기의 정의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우리 중환자실에서는 임종기 면회 대상을 결정한다. 즉, 사망이 임박한 상태가 아니라면 가족이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종기를 판단하는 것은 의사에게도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말기 암처럼 확실히 회복이 불가능한 질환을 진단받은 경우 혹은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환자들에게서만 이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중환자의학 학회들은 중환자 치료에서 가족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족이 환자의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환자의 회복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친다고 믿는다. 연구에 따르면, 가족이 함께할 때 중환자실에서 섬망(delirium) 발생이 줄어들고, 중환자실 입실 기간이 단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중환자의학 의사들도 이러한 연구 결과를 알고 있으며, 한국의 의료환경에서 가족의 역할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환자실은 물리적으로 가족이 머무르기 어려운 환경이다. 가족들이 곁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병상 간 거리는 2미터 정도로, 이는 간호사가 처치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공간이다.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면 간호사의 동선을 방해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머물기 어렵다.


내 기억에 따르면, 미국의 중환자실 근처에는 ‘가족실’이라는 공간도 있었다. 마치 한국의 장례식장 뒷편에 마련된 가족 대기실처럼, 작은 방 안에 소파 하나와 커피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네 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림 2) 의사들은 이곳에서 가족들과 앉아 환자의 상태와 향후 계획을 논의하곤 했다. 가족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공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환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를 의논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가족실 운영이 중환자실 설치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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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미국 중환자실의 가족실 (출처:armaghi.com/)


또 다른 문제는 의료진의 심리적 부담이다. 한국의 중환자실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호자가 상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일반 병실과는 달리, 중환자실에서는 다양한 의료적 제한이 가해진다. 가볍게는 식이 제한과 이동 제한이 있으며, 때로는 치료를 위해 의식을 흐리게 하는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될 수 있다. 또한 중환자실에서는 침상에서 침습적 검사나 치료(예: 도관 삽입 등)가 이루어진다. 이때 보호자가 지켜보는 상황이 의료진에게는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마치 평소 잘하던 일도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긴장하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 미국에서도 가족들이 매일같이 환자 곁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이 있는 상황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족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한 시간 남짓 방문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면회 제한이 풀린다고 해서 보호자들이 24시간 상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면회 제한이 완화되면 가족들은 환자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환자가 의식이 있어 듣는지 여부를 알 수 없더라도, 가족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중환자실에서도 가족들이 환자와 더 오래 머물며,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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