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입실하게 되면 일어나는 일들

by 남경훈

눈을 떴더니 중환자실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앞에 환자는 의료 기계에 여기저기 몸이 연결된 채 누워 있고, 간호사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주변에서 삐삐하고 끝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는 밤낮으로 계속되고, 밤에는 불도 꺼지지 않는다. 오늘이 며칠인지, 밤인지 낮인지 모르겠다. 나의 옆에는 아무도 없고, 홀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내고 싶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손발이 묶여 있다. 이것이 내가 상상하는 중환자실 환자가 의식이 회복될 때의 장면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중환자실에 들를 일이 자주 없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일생에 한두 번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새로운 곳의 모든 경험이 낯설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내과 전공의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중환자실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사람의 생명이 기계를 통해 유지되다니… 이제는 나도 매일 중환자실 환자들을 보며 이러한 환경이 낯설지 않지만, 아직도 환자의 몸에 필요한 도관들을 삽입하고 사람을 기계에 연결 때마다 마음 한편에 불편한 감정이 들곤 한다. 아마도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대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인 것 같다.


현대의 중환자실은 1950년대 소아마비 대유행을 거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소아마비가 전 지구적으로 유행하며 환자들의 숨 쉬는 근육들의 마비가 일어나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던 시기였다. 1952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처음으로 기계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원초적인 인공호흡기가 발명되었고,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의 인공호흡기가 사용되고 있다. 요즘 중환자실에서는 디양한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들이 있다. 가령, 콩팥이 기능을 잃었을 때 투석기를, 심장이 멈추면 체외심폐순환기(에크모)를, 숨을 못 쉬면 인공호흡기를 사용함으로써 말이다.


이런 기계들과 환자의 몸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굵은 튜브 같은 도관들을 몸에 삽입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인공호흡기는 폐로, 투석관과 체외심폐순환기는 큰 대동맥과 대정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 관들을 삽입하고 또 일정기간 동안 유지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통증이 수반된다. 중환자실 의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이렇게 발생하는 통증을 진통제와 마취약을 통해 적절하게 조절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 약물을 통해 환자들이 반쯤 잠든 것 같은 상태가 되도록 만든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의 팔다리를 묶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를 ‘신체 보호대’라고 하며, 이것은 생명 유지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거나 낙상 등의 사고를 방지하고자 환자의 신체 움직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중환자실에서는 많은 환자들이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되어 있고 이들의 연결이 훼손되면 환자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신체보호대가 병원의 다른 어느 곳보다 많이 쓰이게 된다. 특히, 인공호흡기를 적용한 환자들은 거의 모두 신체 보호대를 사용하게 된다.


중환자실에 입실할 때에는 상태가 위중하여 의식이 흐리지만, 치료가 되면서 서서히 의식을 되찾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게 깨어난 환자들은 본인이 현재 어떤 상황이고 어디에 와 있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신체 보호대가 채워져 있는 경우, 이를 억지로라도 풀어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신체 보호대를 더 강력하게 적용하게 된다. 환자의 나이가 많은 경우,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의식의 혼동과 인지기능 장애를 보이는 ‘섬망’이 자주 발생하며, 이 같은 경우에도 신체 보호대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 중환자실 치료는 환자에게도,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경험이다. 환자에게는 신체의 고통과 자유의 제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가족들도 심리적으로 힘들다. 중환자실 치료를 겪고 난 후 불안, 우울 같은 증상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고 난 이후, 신체 쇄약이 발생하여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증상들을 ‘중환자 치료 후 증후군(Post-Intensive Care Syndrome)’이라고 한다.


특히 80세 이상의 초고령 환자들은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나면 이전의 삶의 질을 되찾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전에는 걸어 다니고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던 노인이 병원에 입원하여 1~2주 침상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걷는 능력을 많이 잃게 된다. 하물며 중환자실에서 마취약을 사용하는 상태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2~3주 받게 되면, 대부분은 치료 이후 보행 능력을 잃게 된다. 재활 등을 통해 보행 기능의 회복을 시도해 볼 수는 있으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중환자실 치료를 거쳐 퇴원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은 요양시설(요양원이나 요양병원)로 가게 되고, 집으로 가지 못한 채 그곳에서 남은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초고령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기 전, 가족들에게 위와 같은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설명해 준다. 중환자실의 치료는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받고 나면 예전처럼 다시 못 걸어 다닐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전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는 힘들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경우 가족들은 난감해한다. 중환자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게 되고, 그 힘든 치료를 받더라도 이후 요양시설에서 지내게 될 수밖에 없다니… 따라서 고령의 환자에게 중환자실 치료는 신중해져야 한다.


‘이 환자에게 이렇게까지 힘든 중환자실 치료가 정말 도움이 될까?’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인 것 같다. 어떤 환자에게는 중환자실에서의 적극적인 치료가 도움이 되지만, 또 어떤 환자에게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환자마다 달라서 명확하게 예측이 가능하지 않다. 나 또한 공부를 더 해보기도 하고, 고민도 하지만 나의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환자나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그들의 원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환자실 치료는 환자나 가족에게 모두 힘든 경험이다. 이 힘든 경험이 가치 있으려면 치료 이후 환자와 그 가족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환자의 치료를 포기할 수도 없는 것도 충분 이해가 된다. 이런 경우 중환자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고, 의료진과 가족들이 그것에 따를 수만 있다면 그나마 마음이 덜 무거울 것 같다.


평소 부모님이 건강할 때 자녀들과 중환자실 치료, 연명치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할 때 환자의 뜻을 지켜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환자들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계획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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