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이후의 삶

by 남경훈

중환자실 의사로서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환자들의 중환자실 이후의 삶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외래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에서 퇴원하면 중환자실에 다시 입원하기 전까지는 그들을 만날 일이 없다. 그래서 내가 치료했던 환자들이 퇴원 후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특히 더욱 중환이었던 환자들이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난 후, 그들의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생각해 본다.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적지 않은 환자에게서 후유증이 발생한다. 신체의 쇠약, 그리고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다양한 증상들을 ‘집중치료후증후군(Post-intensive car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명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패혈증이나 호흡부전 같은 질환 자체에 의해서,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쓰는 진정제 같은 약물들로 인해 근육과 신경계의 기능 저하가 남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인공호흡기나 지속적 신대체요법(24시간 투석기) 등을 사용할 만큼 위중했던 환자들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집중치료후증후군으로 인해 이전의 삶을 되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요양병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된 중요한 경험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를 나에게 특징적으로 나누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우선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로 나누어 볼 것 같다.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의 삶은 내가 옆에서 보았을 때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산책도 할 수 있고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환자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사회활동도 가능했다. 운이 좋으면 이런 환자들은 몇 개월 뒤 집으로 가는 경우들도 있었다.


문제는 스스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이었다. 스스로 거동을 못하니, 이런 환자들은 집으로 가는 것도 어렵다.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를 간호나 간병의 경험이 없는 가족들이 집에서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 옆에서 계속 봐주어야 한다. 그리고 거동을 못하는 환자들에게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욕창이다. 몇 시간만 같은 자세로 방치되면, 압력이 닿는 부분에 혈액순환이 충분히 되지 않아 괴사가 시작된다. 욕창은 한 번 발생하면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이 든다. 따라서 이러한 환자들은 남은 일생을 요양병원에서 살아가게 된다.


내가 옆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환자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하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은 거의 하루 종일 침상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개인 간병인을 쓰고 있지 않은 이상, 병상 밖으로 나가 바깥공기를 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느끼기에, 그나마 이런 환자들이 즐거워하는 시간은 재활치료를 받을 때인 것 같았다. 병실 밖에서 얻는 새로운 자극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나마 재활치료가 잘 운영되는 요양병원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뇌졸중이나 뇌 질환이 없는 환자들은 재활치료조차 의료 보험이 되지 않아, 쇠약만 있는 환자들은 재활치료도 받지 못했다.


내가 요양병원에서 일해 보기 전까지는, 중환자실 치료를 마친 환자들이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치료한 상당수의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기나긴 입원 치료 이후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면, 다시 좋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의 환자들의 힘겨운 삶을 곁에서 보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초고령의 환자들, 그리고 임종이 올 때까지 침상에만 누워 있게 될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에게는 중환자실 치료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런 환자들의 가족들에게는 중환자실 치료를 마친 이후 환자의 예상되는 삶의 모습을 이야기해 준다. 물론 모든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나면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가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평소 노쇠하여 집에서도 거동이 어려웠던 환자들이라면,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생존한다고 해도 병상에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게다가 문제는, 요양병원에서 병상에 누워만 있는 환자들은 감염 질환들이 보다 더 쉽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누워 있으니 침이 기도로 넘어가는 일이 많고, 사래가 걸려도 쇠약해서 기침으로 그것들을 뱉어내기가 어려워 흡인성 폐렴이 자주 생긴다. 위생 관리가 일반 환자보다 어려워 요로 감염도 더 자주 발생한다. 이렇게 감염성 질환이 발생하면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고, 어느 정도 낫게 되면 항생제를 끊는다. 이렇게 감염이 재발하고 낫고를 반복하면서 환자의 감염균들은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된다. 그 이후에는 어떤 항생제를 써도 치료가 어려워, 결국은 임종을 맞게 된다.


이것이 요즘 한국의 흔한 임종 과정인 것 같다. 초고령의 환자가 어떠한 이유로든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된다. 장기간의 입원 치료를 받고 요양병원으로 퇴원한다. 하지만 요양병원의 병상에 누워만 지내다가 폐렴 혹은 요로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다시 종합병원의 중환자실로 재입원하고, 그 과정이 반복된다. 이러한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다가 죽음을 맞는 것, 이것이 이제는 흔한 임종의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마지막을 함께하는 죽음이 드문 세상이 되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의 ‘아버지의 세 딸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세 딸들의 이야기였다. 영화의 내용도 좋았지만,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말기 암의 아버지가 집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황마다 보이는 가족들의 반응과 대처를 보는 것이 흥미로웠고, 임종기 동안 모든 가족이 함께 집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내심 부럽기도 했다. 나도 나의 가족이 임종할 때 집에서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료기술은 선진국 부럽지 않게 너무나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돌봄 시스템은 너무나 취약하다. 거동이 불편하고 스스로 영양 공급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은 요양원, 요양병원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한국에서는 의사나 간호사가 병원 밖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의사의 왕진은 2019년부터 여전히 시범사업으로 운영되고 있고, 방문간호도 많은 환자에게 제공되고 있지 않아 집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오래 살면 살수록 노쇠는 필연적으로 온다. 그리고 아무리 건강 관리를 잘한 사람이라도, 일정 나이가 들면 몸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80대 후반의 초고령 노인이 어떠한 문제로든(폐렴, 요로 감염, 코로나, 혹은 넘어져서 발생한 골절 등)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오랜 기간 입원 치료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을, 나는 어떻게 보면 임종기의 시작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집으로 온전하게 퇴원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쇠, 그리고 죽음. 결국은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몸의 자연 회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령의 환자들을 생각해 보면, 입퇴원을 반복할 때마다 환자는 점점 일상생활의 활동 기능을 잃어 간다. 걷던 환자는 그다음에는 워커가 필요하고, 그 환자가 또다시 입퇴원을 반복하면 휠체어 정도만 탈 수 있게 된다. 결국은 너무 쇠약 해져서 스스로 식사를 못 하게 되는 경우, 콧줄(nasogastric tube 혹은 L-tube)을 넣어 영양을 공급하는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우리는 사망 전 1년간 평생 쓴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그 1년 동안은 병원에서만 살다가 임종을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치료한 환자들이 결국 스스로 걸을 수 없어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슬프다. 요양병원에서 더 많이 회복하고, 나중에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기도하지만,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대부분의 환자에게 요양병원이 그들의 새로운 집이 되는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지금의 보편적인 임종 형태와 돌봄 시스템의 취약성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입원 기간 동안 일찍 시작되는 재활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가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다. 바람직한 임종의 과정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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