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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랭 Aug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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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엔 집 안에 있는 시간보다 집 밖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은 마루에 던져 놓고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다.

주로 집 앞 흙마당에서 많이 놀았는데,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친구들이랑 구슬치기나 땅따먹기등을 하며 놀았다. 아마 그 당시 내가 땄던 땅과 구슬을 모두 합쳐서 요즘시세로 환산한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강남에 있는 아파트 한 채는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놀았는지 짐작 가능하리라.

  



흙마당과 안마당의 경계선엔 파란색 대문이 세워져 있다. 시골마을 특성상 대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보니 온전한 제 기능은 못한 체 장식품처럼 멀뚱하게 서서 두 마당 사이만 갈라놓고 있던 파란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보도블록이 반듯하게 깔려 있는 안마당이 있다. 품격에 맞게 벽돌을 동그랗게 쌓아 올려서 만든 작은 원형 화단이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커다란 향나무를 중심으로 그곳에선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을 볼 수 있었다.

봄이면 붉고 탐스러운 작약꽃과, 매혹적 향기를 뿜어내던 하얀 백합꽃 그리고 핑크색 하트 모양 아래 하얀 진주가  매달려 있어서 마치 귀걸이처럼 보였던 금낭화 등등 여러 종류의 수많은 꽃들이 피고 졌다.

그리고 당시 이름은 몰랐지만 매년 봄이면  마치 서예용 대나무 붓처럼 생긴 새순이 길쭉하게 올라온 다음 폭신폭신하고 보들보들한 여린 잎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고 풍성하게 자라던, 마치 동물의 털처럼 폭신폭신한 잎을 가진 식물이 있었다.

어느새 내 키만큼 자란 후에는 초록색 잎 사이로 안개꽃처럼 작고 하얀 꽃이 수줍게 피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서 이 화초의 이름을 알고는 혼자 실소를 터트렸다.  화초의 이름은 다름 아닌 아스파라거스였다. 당시엔 흔치 않았기 때문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주로 새순 상태에서 잘라져 잎과 꽃도 피지 못한 채 스테이크나 양식 요리 가니쉬로 곁들여 먹는 식재료 신세인데, 그런 아스파라거스가어찌 시골 우리 집 화단에 심어져서 해마다 항상 그 자리에서 하얗고 작은 예쁜 꽃을 피웠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하다. 요즘은 화분에 심어져 제법 잘 자라고 있는 아스파라거스를 가끔 카페에서 보게 되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어릴 적 느꼈던 나의 봄을 떠오르게 한다.


  여름과 가을에는 봉선화, 분꽃, 붓꽃, 쑥부쟁이 등이 화단을 풍성하게 장식했다. 꽃이 없던 겨울에는 향나무를 트리 삼아 반짝거리는 싸구려 금빛, 은빛 줄장식을 나무에 빙빙 감아서 꽃을 대신하고는 했다. 비록 두 평 남짓 작은 화단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크나큰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함께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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