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숨수필 3
2006년 2월 14일, 만 30세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콧방귀를 귀었다.
불가능하다.
그건 그들의 생각이자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모든 것이 늦은 나였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가 아닌
최악의 순간에 다가왔다.
IMF라는 최악의 상황을 몸소 겪어야 했던 나에게
정직원이 아닌 알바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그게 내 직업이 되었다.
나름의 전문분야였던 컴퓨터 설치작업 중 일이 벌어졌다.
소위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회사의
컴퓨터를 설치하던 중 그 회사 과장이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컴퓨터의 파일이 사라졌다는 소리를 해댔다.
그 사건이 벌어지고 과장은 길길이 날뛰었다.
나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든 내가 버티고 있자
과장의 말을 거칠어졌다.
옆 사무실에서 지휘하던 설치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팀장조차 상황의 심각성 때문인지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일단 무릎을 꿇라고.
컴퓨터 설치는 외주업체에게 맡겨져 있었고
난 그 업체의 소속직원도 아니고 알바였다.
나에겐 소속이 없었고 힘도 없었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휘청하며 다리가 바닥에 닿으려고 하자
같이 알바로 들어와 잘 따르던 동생이
나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넣었다.
"형, 이건 아니잖아. 우리는 잘못이 없어. 나가자."
난 2006년 2월부터 숱하게 떨어지는 공무원 시험 속에서
불가능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날의 트라우마가 승화되어 악착같이 매달렸다.
2015년 메르스라는 이상한 전염병까지 돌던 상황에
공무원 시험이 치러졌고 난 힘없이 3번의 시험을
그 이전의 시험점수도 한참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시험.
더이상 이제 볼 수 없는 시험.
10년이란 시간동안 묵묵히 지켜봐준 어머니.
친구들이 대놓고 무시하면 불가능이라고 외쳤던
그 말들의 울타리에 난 갇혀 있었다.
마지막 시험까지 12일이 남았고
무엇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이제까지 그런 시간이 남으면
미친듯이 뭔가에 매달렸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험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57전 57패,
그게 이제까지의 내 성적표였다.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던
아니 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졌다.
마지막 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는
주변의 풍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이 시작되었다.
11시 40분 종료가 되었다.
감독관이 답안지와 시험지의 수를 세고는
종료를 알리자 사람들은 교실을 썰물 빠지듯
금세 빠져나갔다.
고요했다.
시험을 보고 곧바로 나오지 못할 만큼
탈진했고, 다리가 풀렸고, 모든 게 빠져나갔다.
30세부터 시작한 공무원 시험이 40세가 된 그 해에
비로소 불가능에 "불"자를 지울 수 있었다.
열심히 끝까지 하면 된다고 누군가 그랬다.
그 "누군가"를 난 내 주위에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꼭 해내고 싶었고
그렇게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