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숨수필] 단팥빵 상자

따숨수필 4

by 연이

어머니의 옷가지와 부탁하신 몇 가지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향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계절의 바뀜을 눈과 몸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차창 밖의 계절은 병원으로 들어오던 가을이 아니라 어느덧 사람들의 외투가 두꺼운 파카로 바뀐 겨울이 되어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버스 좌석 밑에서 나와 졸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병원의 간이침대에서 생활 탓인지 몸이 먼저 노곤함과 피곤함에 반응하였다. 차창 밖은 이미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밖에 남지 않았고 차창 문에 잠깐잠깐씩 비친 내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는 메마른 얼굴이었다.


'그날 그 일이 있지 않았다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것은 IMF로 이름이 있는 굵직한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은행들의 합병이 연일 뉴스 보도로 나오던 시기였다. 제대하고 2년 후 30대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공무원이 최고의 직장으로 치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시험에 금방 통과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년을 봐도 계속 고배의 잔을 기울일 뿐 결과는 답보상태가 이어졌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장수생이 되었다.


2015년 메르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이 돌던 그 해에 난 3번의 시험에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한 번의 시험에서 시험이 끝났을 때 자리에 일어나지 못할 만큼 내 모든 것을 쏟아냈다. 최종합격자 발표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발표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 사이트를 여는 순간 눈이 바쁘게 내 수험번호를 찾았다. 10159. 교육행정(일반) 가로줄 다섯 번째에 내 수험번호가 있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방에서 훌쩍훌쩍 대는 나이 먹은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조용히 들어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의 모습에 뭔 일인가 싶었는지 눈만 끔뻑끔뻑했다. 최종 합격했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등에 꽂히는 어머니의 손바닥은 정신을 번쩍 나게 했다. 떨어진 줄 알았다고. 곧바로 허기가 밀려왔지만, 채용 서류 중에 신체검사서가 있었고, 때마침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바로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에게는 자주 들리는 한의원에 가서 가장 비싼 한약으로 지어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집을 나섰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병원 로비를 나오는데, 형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긴급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침까지 웃으며 다녀오라는 어머니가 수술을 해야 한다니 병원문의 손잡이를 만졌을 때의 찌릿찌릿한 느낌이 손을 타고 머리를 세게 두들기는 것 같았다.


너무 기쁜 어머니는 한의원에 들러 약을 짓고 나오시다가 병원 문 바로 앞에서 낙상을 했고 그렇게 오른쪽 어깨 인대 파열이 되어서 수술을 하셔야 한다는 것을 수술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형에게서 들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시작된 소독약 냄새가 나는 이곳의 생활이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변해갔다.

‘왜 하필 지금 다쳤을까? 그렇게 좋은 날에..... 남들은 오랜 공시생 생활에서 벗어났다며 국내로 해외로 놀러 가는데....’이런 생각이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계속해서 떠나지 않았고, 이런 마음이 항상 마음을 짓눌러 있어 알게 모르게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집에 도착한 난 어머니의 옷가지를 챙기기 위해 옷장을 열어 겨울옷을 꺼내고 화장대 서랍을 열어 부탁하신 물건을 챙기다가 작은 상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무슨 상자일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상자를 열었다. 고등학교 학생증, 대학교 학생증, 전화카드, 그러다가 고무줄로 묶여있던 어떤 뭉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무원 수험표. 그동안 떨어졌던 수많은 수험표를 어머니는 쓰레기통에서 꺼내 하나하나 펴가며 모아놓고 계셨던 것이었다. 수험표 위에 작은 글씨로 삐뚤빼뚤 쓰여 있었다. ‘우리 아들 자랑스러운 수험표들.’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수술 후 통증으로 잠을 못 주무시다가 진통제를 드시고 곤히 잠드신 어머니 옆에 앉았다. 왜 하필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마음에 짐처럼 남겨진 마음과 합격하지 않았으면 어머니도 다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못난 미안한 마음이 겹쳐졌던 것이 떠올라 눈물이 나왔다.


짧은 단잠을 주무시다가 토끼눈이 되어 일어나신 어머니는 날 보고는 방긋 웃어주시다가 내 눈물을 보고는 누가 울리냐며 역정 아닌 역정을 내셨다. 화장대 서랍에 있던 단팥빵 상자를 꺼내니 익숙한 상자를 보시곤 어머니는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셨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 왔다며 가방에서 아까 서랍에서 꺼낸 단팥빵 상자와 똑같은 상자를 꺼내니 어머니의 얼굴을 그 어느 때보다 밝아지셨다. 상자를 열어 단팥빵을 어머니에게 드리니 어머니도 단팥빵 하나를 집어서 내게 내미셨다. 병원 창문으로 햇살 가득 들어오던 날 어머니와 단팥빵을 먹으며 새 상자에 오늘의 기억을 골막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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