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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Oct 19. 2021

[교행일기] #73. 시간도둑

시간도둑


연이의 시점


연이는 학교로 출근하면서 며칠 째 끌어온 급여 작업을 오늘이야말로 끝내려고 벼르고 별렀다. 컴퓨터를 켜고 엑셀 파일을 열어 하나 둘 점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실제 고지서 사이에서 빗금 체크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맞구나.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한 군데에서 막혀버렸다. 3번 캐비닛을 열어 관련 서류를 모두 꺼내와서 비교하기 시작했다. 틀린 부분을 찾아야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오리무중이다.


온몸이 뻣뻣하기에 기지개를 켜다 행정실에 걸린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이곳에는 도둑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어째 아침이었는데, 업무 하나 하고 나니 점심이고, 또다시 전화받으며 설명을 해주고 나니 3시가 되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주무관님들이 보였다. 분명 시간도둑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순간순간 시간을 통째로 빼서 어디에 팔아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놈의 도둑을 잡아 순간 벙 지게 만든 시간들을 다 토해내라고 하고 싶다.


그나저나 연이는 왜 그 선생님에게 가족수당을 준 것일까? 기억을 더듬어도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간도둑의 시점

교행 꼬꼬마 연이의 시간을 훔치는 것은 시간도둑에게는 아주 식은 죽 먹기였다. 연이가 무언가에 열중을 하고 있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지. 그때 아주 잠깐 연이의 시간을 멈추고 연이의 시간 테이프를 열어 길게 늘여 열중한 그 시간부터 다음 시계를 보는 시간까지 싹둑싹둑 잘라서 시간의 풀로 살짝 바른 후 시간 테이프를 제자리에 넣고는 시간을 재생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 아주 간단하지. 신규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시간도둑인 나에 대한 의식을 잠깐 하지만, 그저 일을 배우느라 집중할 때 나타난다고 머릿속에 심어주면 아주 자연스럽게 시간도둑에 대한 생각은 잊게 되지.


그런 시간을 모아 모아 게으름을 펴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몰아넣어주는 거야. 그들 역시 자신의 시간이 남들의 시간과 똑같은 24시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시간은 아주 느리게 간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



제3자의 시점

연이 주무관은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하고 있다. 그의 집중력에 놀라울 정도다. 몇 시간 째 저리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옆에서 말을 걸기가 힘들다. 마치 업무와 한 몸이 된 느낌이랄까.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내는 그의 몸에서는 아우라가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행정실 앞쪽에 있는 시계를 보더니 어리둥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모습에서 신규의 냄새가 풀풀 난다. 나 역시 신규 때는 저랬는데....


그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선생님 한 분이 그가 하는 급여 작업과 관련된 부양가족신고서와 주민등록등본을 내러 왔다. 그의 자리에 살포시 놓다가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아침에 하고 있던 작업을 본 것 같은데, 그는 아직 그것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신규는 체계화된 자신만의 매뉴얼이 몸에 탑재가 되려면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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