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Nov 04. 2021

[교행일기] #81. 주무관으로서의 책임감

주무관, 이름에 담긴 책임감


6년 차, 세 번째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벌써 10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11월 1일 자로 정들었던 급여담당 주무관님을 발령받아 가고 신규 주무관님이 왔다. 신규의 떨리는 마음이 연이에게도 전해졌다.


어머니의 암수술을 위한 최종 검진을 위해 10월 마지막 이틀을 병원에서 보내는 바람에 발령받아 떠나는 주무관과 얘기도 많이 나누지 못했는데, 돌아와 보니 이틀 비운 사이 품의가 참 많이도 쌓였다. 이번 학교에서는 급여를 하지 않고 주 업무가 지출이라 엄마새를 기다리는 울부짖는 배고픈 아기새처럼 품의들이 연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학생들을 위해 구매하는 학습 관련 물품 품의와 학생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관련된 유지보수 품의이다.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들의 마음을 담은 하나하나의 품의들이 연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빨리 처리해주고 싶지만, 연이의 마음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물품은 선생님이 말한 금액과 동일하지 않기도 하고 품절이라 구매가 불가능했다. 일단 그런 것들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포스트잇 띠지에 잘못된 부분이나 처리할 내용을 기입한 후 두툼한 서류뭉치 뒤로 옮겼다.


한 타임 그렇게 처리를 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이 훌쩍 지났다. 신규 주무관의 첫날은 어떤 마음일지 알지만, 일단 전임 급여 주무관님이 그를 위해 남긴 인수인계서를 보고 있는 것을 바라만 봤다. 무척 열심인 것을 보니 예전의 연이가 생각났다. 낯설고 낯선 그 생경한 찌릿한 느낌. 연이는 여유를 부리기에는 11월 첫날이라 시간이 나지 않았다.


3시가 넘어가자 조금 숨통이 트였다. 오늘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어느 정도 끝났고, 다음에 처리할 업무들이 알람처럼 울리지만, 화장실을 다녀오다 데스크 테이블에 전임 급여 주무관님 명패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눈에 밟혔다. 아무리 바빠도 그것은 갈아주고 싶었다.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던 게 명패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 발령받은 연이의 이름을 매번 물었었다. 명패를 만들어 하나씩 달아드리고 연이 자리에도 달았더니 이름을 묻는 비율이 줄었다.


신규 주무관님을 위해 OO초등학교에서 만든 명패 양식을 다시금 열었다. 이름을 수정해서 인쇄 버튼을 누르니 10초 안에 그의 소속과 이름이 인쇄되어 나왔다. 칼로 규격에 맞게 오리고 아스테이지를 붙이고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여 기존 두꺼운 종이로 만든 삼각 명패에 착 붙이니 명패가 완성되었다. 삼각 명패 아랫부분은 아직 손을 살짝 대어도 양면테이프의 끈적임이 남아 있어 기존에 위치한 곳에 꾹꾹 눌러 붙여주며 신규 주무관님에게 말을 건넸다.


“주무관이란 호칭을 달기 위해 오래 공부했고 이뤘으니 이름에 걸맞게 책임감 가지고 잘 적응했으면 해요.”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매거진의 이전글 [교행일기] #80. 나이스 인증서 만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