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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Nov 22. 2021

[교행일기] #88. 첫 급여날, 그 떨림

첫 급여날, 그 떨림


17일 아침, 겨울이 성큼 다가온 가을 끝자락의 아침 공기가 유난히 쌀쌀하고 어깨가 움츠려 드는 날씨였다. 추위는 갑자기 항상 찾아온다. 그래서 가을의 가벼운 긴팔 차림은 어느새 파카의 두꺼운 점퍼를 걸친 사람이 유난히 많은 날이면 겨울이 된다. 그들의 몸은 앞으로 굽고 겨울의 한기가 옷 속을 파고들지 못하게 몸을 동그랗게 최대한 말고 종종걸음으로 그들의 목적지로 빠르게 움직인다.


연이가 학교를 두 번 옮기고 세 번째 학교에 오고 나서는 차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등교할 때보다 가볍게 입고 움직여도 되는 편리함도 있었지만, 학교로 들어가서 차 안의 나만의 공간에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소진한 몸을 이끌고 빠르게 집으로 복귀하는 이동수단으로 차는 어쩌면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다. 연이는 하루에 처음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가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작이었다.


출근시간 10분 전, 행정실에 들어선 연이는 환한 표정으로 행정실 식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신규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뭔가 묻기 위해 입이 달싹이는 것을 감지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의례적으로 켜고 바탕화면으로 진입하기 위한 비번 치는 화면을 기다리며 가방을 책상에 얹었다.


"연이 주무관님, 저기 제가 어제 초근을 하면서 급여 원인행위를 다하긴 했는데요. 교장선생님 결재를 못 받았어요? 오늘 나갈 수 있을까요?"

신규의 다급한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월급날은 대부분 25일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급여 지급일은 17일이다. 매월 1일에서 8일, 9일 사이에 급여가 마감이 되고 나면 실제 지급되는 17일이 되면 공무원들은 나이스 급여 작업만으로 교육청에서 급여가 해당 공무원에게 지급을 하고, 교육감 소속 근로자는 학교에 교부된 인건비로 지급하기 위해 원인행위와 지출결의라는 두 가지 작업을 통해 해당 근로자에게 지급이 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https://brunch.co.kr/@a04cfbf5a6fc4d0/39


여기서 신규가 못한 것이 원인행위의 결재인데, 담당자-행정실장-교장의 결재를 맡는 3단 결재라인을 타는 급여 작업이다.


어쩌다 보니 벌써 17일이 흘렀다. 방학이라 교장선생님의 출근이 일정하지 않았다. 연이는 급여의 원인행위 결재를 받지 못했다. 신규 교행에게는 교장선생님의 복무까지 기억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급여의 원인행위를 받지 못한 것은 급여가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타들어갔다.


어찌해야 하나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답답함이 지구가 달을 너무 잡아끌었나 썰물이 연이의 마음을 잠식하고 남을 만큼 깊숙이 잠겼다. 실장님 앞에서 물속에 잠긴 입을 입만 벙긋거릴 뿐 전달이 되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났다, 화장실도 가고 싶지 않았는데, 실장님의 기분과 안색을 살피려 일어나고 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등에서 흐르는 땀은 식은땀인지 차갑고 또 차가웠다. 손에 땀은 나는데, 닦아도 왜 계속 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30분이 지나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실장님에게 다가갔다.


"실장님!"

부르고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연이를 빤히 실장은 쳐다봤다. 연이는 그런 실장의 얼굴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빨리 말하라고 얘기하지만,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연이를 보고는 실장은 중앙 테이블로 앉혔다.

"연이 주무관, 무슨 일이지?"

"저기, 실장님. 급여 원인행위를 올렸는데, 교장선생님이 오는 나오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서요. 급여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근로자들이 저 때문에 급여가 안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실장은 그런 연이를 보고는 걱정마라며 일단 자리로 돌아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실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조금 있으면 결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첫 급여는 지급이 되었다.


그날 버스를 타자마자 녹초가 된 연이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OO주무관님, 그런 경우 일단 실장님에게 보고하셔요.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오늘 일이 있다고는 며칠 전에 얘기를 들었지요? 결재라인의 복무는 기억해야 해요."


안도의 한숨이 신규 주무관님의 얼굴에 번져 창백했던 얼굴에 다시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첫 급여날의 떨림이 고스란히 연이에게도 전해졌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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