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 발령장 수령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웠다. 커다란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의 심리상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분노의 5단계가 생각이 났다. 부정-분노-타협-우울증-수용 이렇게 5단계를 거친다고 되어 있다. 아마 연이는 1단계의 부정의 단계에서 2단계인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부정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을 보면 딱 그렇다. 밤새 뒤척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마지막 OO초등학교의 근무를 위해 고양이 버스에 올랐다. 이제 아침 출근에 만나는 고양이 버스도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고 아직 마음의 마지막 단계인 수용의 단계까지 가려면 참 멀었구나 했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 발령을 받는 것이니 좋아야 하는데, 왜 연이는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일까? OO초등학교에 남고 싶어 나쁜 점, 아니 좋지 않은 점을 연이는 ■■초등학교에서 찾는 것은 아닐는지. 그래. 충분히 OO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했고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근무를 했으니 당연한 발령의 수순인데, 아쉽다. 맞다. 그 감정이 맞다.
아침 일찍 행정실에 도착한 연이는 연이부터 솔이 주무관님과 사회복무요원 자리까지 쭉 이어져 있는 데스크 테이블을 쓰다듬으며 연이의 명패에서 이름을 빼냈다. 블라인드를 열고 창문을 활짝 열고 연이와 2년 9개월을 같이 한 컴퓨터의 마지막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할 수 있는 만큼 연이의 일을 끝내려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충격은 가시지 않았지만, 일은 끝내고 가고 싶었다. 15시에 있을 교육지원청 대회의실의 10월 1일 자 인사발령장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더욱 작업 속도를 높여야 했다.
연이는 시간이 되어 OO초등학교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교육을 위한 출장은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연이는 늘 즐거웠는데, 오늘만큼은 그런 기분이 나지 않았다. 30여분의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연이는 대회의실로 곧장 올라갔다. 1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발령장 수여식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연이의 얼굴을 보고는 전화통화로 목소리만 익히 알던 인사담당자가 맨 앞의 옆자리에 연이를 안내를 했다. 옆에는 ■■초등학교를 떠나면서 승진을 한 연이의 전임자가 될 주무관님이 서 있었다. 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인수인계를 해도 될까요?"
연이는 그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아직 인수인계조차 작성을 못한 연이이기에 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있기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첫 발령이다 보니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저녁에는 송별회가 있어서 안 되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10월 1·2·3일 중에 한 번 찾아갈게요. 컴퓨터 바탕화면에 인수인계서를 작성해놨으니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수여식이 시작이 된다는 인사담당자의 사인이 있자, 연이는 전임 주무관님에게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임 주무관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연이의 불안했던 마음은 조금 누그러졌다.
지금부터 2021년 10월 1일 자 인사발령에 따른 발령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국민의례와 애국가는 생략하겠습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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