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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Dec 18. 2021

[교행일기] #105. 불시 보안점검

불시 보안점검


학교마다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 총 두 차례의 불시 보안점검을 실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불시 보안점검을 했다. 행정실에서 진행하는 불시 보안점검은 교직원들에게는 비밀에 부치는 보안사항이다. 날짜,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행정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야 불시 보안점검이 된다.


불시 보안점검 목록은 다음과 같다.

공문서 방치, 시건장치, 전원 차단, USB방치, 개인정보 문서 방치, 노트북 방치를 주요 점검 사항이다. 연이는 행정실을 제외하면 교직원들이 과연 이런 것들을 그들로 두고 퇴근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10년 동안 이 일을 해왔던 실장은 아주 부지기수라고 했다. 몇 반 되지 않은 작은 학교라 학년에 세 반이 있는 반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아주 단출했다. 불시 보안점검 인원은 행정실장님, 연이, 시설주무관님, 사회복무요원 이렇게 4명이 진행하기로 했다.


오후 5시가 넘자 연이와 사회복무요원은 4층, 5층을, 실장님과 시설주무관님은 2층, 3층을 맡아서 보드판에 점검 목록을 끼고 올라갔다. 연이조는 5층에서 4층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실장님조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점검을 시작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실장님조가 3층에서 먼저 내리고 연이조는 5층까지 쭉 올라갔다. 첫 교실부터 문을 잠그지 않고 퇴근을 했다. 헐~~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번호키 자물쇠가 교실 칠판 받침대에 칠판지우개 옆에 가지런히 놓여 분필가루를 뽀얗게 뒤집어쓴 모양이 자물쇠가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본업을 하고 싶어도 칠판지우개 짝꿍처럼 칠판 받침대 자물쇠 피규어가 되어 하지 못한 자물쇠에게 생명을 부여해줬다. 당연히 시건장치 칸에는 가새표를 그었다.


두 번째 교실에 가니 작성하다가 급하게 퇴근을 했는지 공문서 출력본이 버젓이 책상에 떡 하니 놓여 있고 모니터는 전원이 들어와 있는지 전원 불이 깜빡깜빡하고 있었다. 컴퓨터 본체는 다행히도 꺼져 있었으나 주전원장치는 어두운 교실에 등대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공문서 방치, 전원 차단에 가새표 체크.


세 번째 교실에 가니 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6개의 항목이 모두 가새표를 받다니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이렇게 체크만 하고 교직원들에게 주의해줄 것을 권고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실제 교육지원청이나 본청 또는 교육부에서 나오는 보안점검에 해당 교실이 걸리면 징계까지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 심각성을 조금 알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휴대폰을 열어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모든 교실과 특별실을 도니 징검다리 가새표가 목록표에 그려져 있었다. 내일 실장님이 불시 보안점검 후 결과보고를 하고 교직원에게 주의·권고 쪽지를 보내고 나면 해당 교실 담당 선생님의 표정이 어떨지 벌써부터 연이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서로가 조심을 한다면 이런 보안점검 정도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연이는 기대를 해본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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