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얼굴들
아침에 오자마자 실장님은 오후에 조퇴를 한다고 했다. 오늘 오후에 초임지인 ○○초등학교 행정실 식구들이 온다는 말을 오전에 하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용무로 실장님이 조퇴한다고 하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것보다 오후에 실장님이 없으니 오늘 꼭 해야 할 일을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매일매일 실장님과 교장선생님의 스케줄을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오늘 꼭 해야 할 일을 놓치기 일쑤였던 며칠간의 암담한 현실에 연이는 어쩔 줄 몰라했다. ○○초등학교에서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큰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마음속 화초를 들여다봤다. 겨우 땅속을 비집고 나온 연이의 마음속 화초는 아주 작은 시린 바람에 화들짝 놀라 해 있었다.
익숙한 업무보다 익숙하지 업무가 더 많은 차삼석의 위치가 오늘따라 너무 많이 어깨가 아릴 정도로 무겁다.
대화창이 깜빡인다. 반가운 분의 대화창이다.
"연주무관님~~~ 오후 2시에 출발하려고 해요."
솔이주무관님의 대화에 시계를 보니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실장님의 개인 소지품을 챙겨 나가면서 내일 보자고 행정실 문을 나서고 있을 찰나였다. 고개를 꾸벅 숙이면 '내일 뵙겠습니다' 외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부터 옆 책상은 자리가 비어 있었는지 먼지가 가득하다 못해 쌓이고 쌓여 있었고 바닥은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찌든 때가 장판 가득 묻어 있었다. 행정실 바닥이 진짜 장판이라니 놀라운 정도였다.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소리는 여기서는 사치였다. 일단 창문을 열었다. 10월의 청명한 가을은 이곳에서도 있었다. 정말 뷰가 참 좋은 학교였다.
다행히 두리번거리다 청소기를 찾았다. 돌아가기는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원코드를 콘센트에 꽂고 전원을 올렸다. 청소기를 바닥에 쓱싹쓱싹 밀어보았다. 처음과 다르게 청소기는 악다구니를 쓰듯 굉음을 뿜어내기만 할 뿐 바닥에 있는 먼지는 드문드문 빨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청소기 앞 헤드를 보니 뭔가 꽉 막고 있었다. 언제부터 막혀 있는지 어디 돌아다니가 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뚜껑과 클립, 머리카락들이 뒤엉켜 막고 있었다.
겨우 빼내니 청소기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명이 있기에는 정말 큰 행정실을 구석구석 청소기를 밀었다. 2시까지 20분도 남지 않았다. 마포 걸레는 화장실에서 본 것 같아 동쪽 끝 화장실로 뛰기 시작했다. 찌든 때는 꾹꾹 눌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30cm 자로 긁어 밀어내고 닦기를 반복을 했다. 그렇게 청소를 하고 나니 조금 행정실다워졌다.
행정실 문을 열어놓았더니 복도에 울리는 반가운 얼굴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행정실 문으로 빼꼼 그들을 쳐다봤다. 반가움에 얼른 나가 ○○초등학교에서 퇴근할 때 매번 했던 90도 배꼽인사를 했다. 그들도 인사를 했다.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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