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전화 1탄
인사하고 또 인사
1월 4일 첫 출근을 한 연이는 USB에 인증서를 담아왔느냐는 질문에 가방에서 자신 있게 꺼내 보였다. USB를 꽂자 윈도우 탐색기를 열어 마우스가 쉴 새 없이 클릭을 해서 숙련자답게 인증서를 GPKI폴더에 복사해 넣어줬다. 인터넷뱅킹은 NPKI 폴더에 인증서가 저장이 되는데, 정부기관 인증서라 G가 붙은 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 있는데, 교육지원청에서 같이 발령장을 받을 때 보았던 행정실장님이 왔다. 인사를 큰소리로 하고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딱히 지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연이는 가방에서 집에서 정리한 10장짜리 인수인계 요약본과 이 주무관님이 보내준 인수인계서 출력본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장님도 뭔가 준비가 되었는지 연이를 찾았다. 행정실 문을 나서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었다. 큰 키의 실장님은 성큼성큼 앞서 갔다. 복도 앞에 보니 전입자들의 직과 성명이 쓰여 있는 종이가 입간판처럼 붙어 있었다. 교감 선생님, 실장님, 연이. 이렇게 3명이 발령자였다. 살짝 흘겨보는 사이에 실장님과의 거리가 더 벌어졌다. 2층으로 올라가는 실장님은 교장실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쳤다.
똑똑
교장실 안에서 "네"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장님을 따라 들어간 연이는 교장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교장선생님은 실장님과 연이를 자리에 앉을 것을 손으로 소파로 안내했다. 실장님 옆에 앉은 연이는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심장이 두 근 반 세 근 반이었다. 커피 세 잔이 탁자에 놓였고, 교장선생님과 실장님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교장실, 들어가 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한 번도. 어떤 식으로 생겼는지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장소에 연이가 와 있다니 생경했다. 조금은 신선했고, 낯설어서 긴장이 되었다. 두 사람의 담소 중간중간 연이의 얘기가 나오면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을 했고, 대답을 할 수 없는 부분은 웃음으로 처리했다. 조금 있으니 새로 오신 교감 선생님까지 교장실에 합류했다. 또 인사를 하고 교감선생님이 앉아 세 분의 담소가 이어졌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교장·교감선생님의 말이 이어졌고 그렇게 20분 정도 지나 교장실을 인사하며 빠져나왔다. 화장실을 찾는 연이의 눈은 바빠졌다. 저번에 왔을 때 화장실을 봐 두었어야 했는데, 그때도 마음만 바빴다. 일단 행정실로 실장님과 내려온 뒤 인증서 신청서를 받은 김 주무관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얘기하고 행정실 문을 나왔다.
여보세요? 무언가 잘못되었다
복도에 자리 잡은 대형 어항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가 오르락내리락 유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먹이를 주었는지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먹이를 먹으려고 뻐끔거렸다. 화장실은 행정실에서 나와 대형 어항을 지나고 도서관을 가기 전 바로 있었다. 초등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학교로 출근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 중에 하나였다.
행정실로 다시 돌아온 연이는 김 주무관님을 통해 교육청에서 초등학교로 나이스 작업을 해주어야 학교의 나이스 담당자가 다시 작업해줘야 비로소 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귀로는 들었지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이것을 알아들으려면 2년 후의 연이를 소환해야 할지 모르겠다.
행정실에는 행정실장, 주무관 2명, 직원 1명, 사회복무요원이 있었다. 그것 역시 잠시 행정실 중간에 있는 탁자에 실장님이 모이라고 해서 서로 얘기를 하면서 알았다. 잠시 사회복무요원이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사회복무요원 쪽 자리에서 전화기가 울려 그쪽으로 달려갔다.
"여보세요. OO초등학교입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말은 빠르게 뭉개졌다. 어느 업체라는데 도통 뭘 요구하고 누굴 찾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알바를 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재차 업체명을 물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어디 업체라고 하셨죠?"
"아, OO종합상사요?"
김 주무관님이 자기를 바꿔달라고 했다. 전화기의 수화 부분을 막고 전화기를 봤지만, 그 자리로 돌리는 방법을 몰랐다. 허둥대는데, 사회복무요원이 가지고 갈 게 있는지 잠시 행정실로 들어왔다. 연이가 뭘 하려는지 금방 알아채고는 알려주었다.
"전환 누르고 OOO 누르면 됩니다."
김 주무관님은 전화통화를 마치고 인쇄된 무언가를 들고 내 자리로 왔다. 전화응대요령, 내선번호, 전화기 사용법이 담긴 매뉴얼이었다.
'안녕하세요. OO초등학교 연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전화가 끊어지면 OOO번으로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당겨 받기는 별표 2번, 돌려주기는 전환 버튼 누르고 내선번호'
속으로 계속 웅얼웅얼 댔다. 그러면서 아까 '여보세요'가 생각이 났다. 첫 실수였다. 전화 건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했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아직 장소도 사람도 낯설고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더더욱 안갯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