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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10. 2021

[교행일기] #6. 업무포털

로그인, 업무의 시작

점심식사


12시가 되었다. 연이는 실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컴퓨터 안의 파일들을 이것저것 열어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연 주사, 점심 먹으러 가지?"


뚜벅뚜벅 행정실 문 앞으로 다가서는 실장님을 따라잡으려고 후다닥 나가면서 김 주무관과 다른 분들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어서 먹고 오라는 손짓을 해주었다. 실장님은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사실 식당이 어디인지도 몰라서 어딜 가지도 못할 것이었다. 1학년 교실이 있는 쪽에서 학생들이 연주하는 오카리나 소리가 났다. 은은하고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를 듣자니 오전의 실수가 잠시 잊는 듯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연 주사는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짧게 대답을 했지만, 밖에서 보는 초등학교와 다르게 안은 활기차고 경쾌했다. 연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과 사뭇 달랐다. 복도에서 100미터 질주하는 학생들도 보였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려 떼를 쓰는 1학년 학생도 보였다. 아마도 수업을 받는 학생이었던 어린 연이와 일터로 교실이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큰 연이의 시공간의 격차는 많이 차이 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명랑하고 쾌활한 분위기며 깔깔대고 웃는 학생, 훌쩍이며 으앙 울어대는 학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초등학교에서 풍기는 공통된 분모였다.


1학년 교실 쪽을 따라 지나가 아래층으로 향한 계단을 내려가니 식당이 나왔다. 에어커튼의 바람을 맞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한쪽에는 오늘의 식단이 붙어 있었다. 빠르게 그걸 읽어냈다.


현미밥, 미나리 숙주나물무침, 치즈 함박스테이크, 배추김치, 청국장찌개


식단 밑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을 적혀있었다.


학생의 배식 줄과 다르게 교직원용으로 한쪽에 따로 마련이 되어 있었다. 실장님은 식판을 들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왼쪽 손 아래에 꼈다. 어미새를 따라 하는 아기새처럼 연이도 그렇게 했다. 그러고 식판에 밥을 푸고 차례대로 식단에 있는 반찬과 국을 담았다. 실장님을 행동을 복사하듯 푸고는 실장님 옆자리에 앉았다.


실장님은 말없이 열심히 전투적으로 밥을 먹었다. 연이가 그 속도를 따라잡기 버거웠다. 실장님이 다 먹었을 때 연이는 반도 먹지를 못했다. 실장님은 연이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 그런 것을 눈치챈 연이는 다른 것은 포기해도 제일 먹음직스러운 치즈 함박스테이크는 포기하지 못했다. 한 입을 물고 오른쪽 볼에 다시 또 한 입을 물어 왼쪽 볼에 넣고는 오물오물했다. 그렇게 먹는 모습이 웃겼는지, 실장은 천천히 먹으라며 자기 식판에 남은 음식을 국그릇으로 모았다. 실장의 그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잔반을 처리하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실장은 한 방에 국그릇을 털어버리고는 식판을 엇갈리게 놓고 숟가락은 숟가락 바구니에, 젓가락은 젓가락 바구니에 노련하게 분리하고는 에어커튼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업무포털 로그인


실장님은 잠시 교장실에 갔다 온다며 행정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실장님과 점심을 먹고 온 사이에 나이스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는지 업무포털에 사용자 등록을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어렵지 않은 것이라 말해주고는 김 주무관님은 다른 직원과 사회복무요원을 데리고 점심식사를 하러 행정실을 빠져나갔다. 행정실에 혼자 있다는 것은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불안감과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공존했다. 전화벨이 울리거나 누군가 행정실 문을 열어 뭔가를 요청하지 않으면 키보드 자판 치는 소리 외에는 무음이 계속 이어졌기에 행정실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고, 연이의 어깨에는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업무포털 메인 화면은 학생들이나 교직원의 힘을 불어넣는 글이 있는 사진 옆에 있었고, 아이디라고 쓰여 있는 빈 사각형 폼에 커서가 깜빡였다. 그 밑에 친절하게 신규 사용자를 위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1. 사용자등록 클릭

2.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인증서 선택 버튼을 클릭

3. 사용자 아이디를 입력한 후 중복체크 버튼 클릭

4.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입니다라고 나오면 사용 버튼 클릭

5. 마지막으로 등록 버튼


위 과정을 거치고 이전 화면에서 보았던 깜빡이는 아이디 빈칸에 연이의 아이디 기입하고 로그인 버튼을 누르고 인증서를 선택 후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업무포털에 진입할 수 있었다.


5년 후 연이가 보내온 이미지

업무포털 로그인을 하고 급여를 해볼 생각에 나이스를 눌러보니 연이에게는 권한이 없어서 국공립급여 탭이 없었다. 교장실에 다녀온 실장님은 커피 한 잔 먹자며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타서 행정실 중앙 탁자에 앉았다. 연이도 커피를 타서는 따라 앉았다.


서로에 대해 정보가 없는 어색함이 잠시 흘렀다. 흐르는 시간만큼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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