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22
'독자(獨自)'가 독자(讀者)'에게
혼자였다.
태초에 하나였을지 모를 그 어둠 속에서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그 어둠 속에서 있던 것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꿈틀대는 움직임이 강해질수록 뭔가가 나오려고 했다. 금이 가고 또 금이 갔다. 깨진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와 어둠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나왔다.
혼자였던 아이는 희로애락의 여러 형태의 감정을 만나기 시작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아이의 얼굴은 이전보다 밝아졌다. 그게 그저 좋았다. 무미건조한 혼자였던 그때보다 지금이 좋았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의 고통의 감정을 희로애락에서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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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늘 혼자였던 독자(獨自)였던 제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꼈던 것은 '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이라고 한 이유는 글 속의 '세상'은 온전히 제가 만든 세상이었고, 그 속에서 절 대신해서 제 얘기를 들려줄 주인공을 탄생시키고 소멸시켰습니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주인공은 그 힘을 잃고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을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제 글을 읽는 '독자(讀者)'들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기뻤지만, 점점 많아지는 수에 조금씩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사실 어쩌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기에 글이란 '세상'을 만들어 그 속에 절 대변해 주는 '주인공'을 탄생시켜 그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었으면서도 그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부담감이 생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연이의 감정을 갖고 글을 쓴 수많은 이곳의 글들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한 편 한 편 올렸습니다. 그게 그저 좋았습니다. 짤막한 위의 글 속의 주인공처럼 글을 쓰고 있으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독자(獨自)'였던 연이가 수많은 '독자(讀者)'에게 그대의 찬란했던 오늘을, 다시 볼 수 없는 오늘을, 이곳에 연이의 감정과 저장합니다. 다른 형태의 수많은 글들의 주인공을 통해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BOUT '단미가'(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일명 '단미가'는 연이가 어릴 적, 학창시절, 대학교 시절, 공시생 시절, 교행 근무하는 지금과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괄하여 특정 단어의 의미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연이만의 '연이체'로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려고 기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