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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an 19. 2022

[교행일기] #110. 연말정산, 정신이 없다

연말정산, 정신이 없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선생님들과 직원들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정말 버거웠다. 옆의 직원은 뭔가 말을 할 것 같은 연이가 액션을 취할라 싶으니 사라져 버렸다. 전화라도 받아주면 좋으련만, 모든 것이 힘에 버거운 쪽으로 흘렀다. OO초등학교와 달리 ■■초등학교의 구성원은 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이 없는 행정실에서 일한다는 것에 연이는 해서는 안 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힘들 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정작 연이가 힘들 때는 나몰라 하는 것을 보며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을 포기해야 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고 허둥지둥 연말정산의 서류받기에 지쳐갈 때 즈음, 선생님 중 한 명이 연이의 마음을 읽었는지 몰려 있는 그들에게 자신이 먼저 정리한 순서대로 그들의 서류를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연이는 그 틈에 완성이 된 선생님의 서류를 살펴보며 연말정산 서류를 보관함 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굳이 그 선생님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행정실을 가득 메운 선생님들이 그 선생님의 도움으로 썰물 빠지듯 행정실이 비워졌다. 끝까지 남아 있던 선생님에게 비타500을 건넸다. 한사코 거부하던 선생님에게 한 병을 까서 건네고 연이도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연말정산, 정신없지요?"

먼저 선생님이 연이의 마음을 읽고 말을 붙였다. 대답 대신 웃음으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니 한 마디 덧붙였다.

"예전에 여기 계셨던 주무관님이 저 연말정산 몰랐을 때 도움을 많이 주셨었어요. 그때가 생각나서 말이지요."

과거의 좋은 기억이 소환이 되었는지 흐뭇하게 비타500을 한 모금 더 들이키는 그를 보며 연이도 마저 비우고는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다.

"좋은 주무관님 덕분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네요. 한숨 돌릴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이의 빈병을 빼앗듯 자신이 버려주겠다며 어서 일 하라고 자리를 피해 주며 나가는 그를 보며 ■■초등학교의 부정적인 연이의 마음이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겨울 햇살이 이중창을 뚫고 행정실을 따스하게 데우고 있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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