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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Feb 16. 2022

[교행일기] #113. 인감변경 사건

인감변경 사건


새로운 실장님이 바뀌고 나니 모든 통장의 인감을 변경해야 했다. 정기예금까지 모두 합쳐 20개의 통장을 바꾼다는 공문과 A4용지의 인감 그리고 혹시 필요할지 모를 여분의 인감까지 모두 준비를 마쳤다. 연이는 그렇게 은행업무를 시설주무관님에게 부탁을 하고 다른 업무에 매진하고 있었다.


연이는 아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에 계속 시계를 쳐다봤다. 보통 1시간 전후로 은행에서 돌아오는데, 벌써 1시간 30분이 넘어 2시간을 향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거나 문의사항이 있으면 은행에서 학교로 전화를 주는데, 그런 전화도 없었다. 그러니 더 불안했다.


인감변경을 그리 흔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통 한 학교에 2년이 있는다 치면 자신이 오기 전에 실장님이 왔을 것이고 길면 1년 6개월 후에 실장님이 가실 때 한 번을 할 것이다. 실장님과 자신이 동시에 왔는데, 이 업무를 맡는다면 오자마자 딱 한 번 하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기억을 더듬어하게 된다. 다행히 연이에게는 연이만의 교행실무매뉴얼을 만들어놨기에 조금은 수월했지만, 사실 통장의 개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


바로 거기서 실수가 발생할 수 있기에 검토에 검토를 더한다. 그래야 실수를 최대한 미연에 방지를 할 수 있다. 연이는 무려 열 차례나 검토를 했고, 혹시나 은행 직원이 편하게 작업하라고 일일이 표로 만들어서 인감을 찍어 보기 편하게 작업에 배려까지 했다.


드디어 시설주무관님이 왔다. 엄청 오래 걸려서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가 근무하는 동안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은행에 가니 새로 온 분이 일처리를 했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연이는 무슨 생각으로 믿었을까?


통장의 개수를 세어보고 세외통장과 세외 정기예금은 급여주무관님에게 넘겨주고 나머지를 일단 급한 일을 먼저 하기 위해 서랍에 몽땅 집어넣었다. 다음날 일을 하다가 어제 인감변경 건이 생각이 나서 급여주무관님에게 세외 정기예금은 퇴직금이 보관이 되어 있으니 통장에 표시를 해야 한다며 알려주다가 발견한 뭔가가 연이를 경악하게 했다.


인감이 이상했다.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등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급여주무관님에게 건네 준 4개의 통장을 모두 회수하고 연이가 가진 16개의 통장을 합쳐 20개 모두 살펴보니 무려 15개 인감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이런 것을 은행에서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바로 확인을 안 한 연이 자신에게도 잘못은 있어 잠시 멘탈이 나갔다.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오자 해결방법을 위해 다시 한번 틀리게 변경한 인감과 맞게 변경한 인감을 따로 분리하고 대책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연이의 잘못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럴 가능성이 낮았다. 이미 모든 서류를 10번 넘게 확인을 했고, 인감변경신청서에도 맞게 찍으려고 통장마다 일일이 인감을 비교하며 찍었다. 그러면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감변경을 위해 통장에 붙일 인감을 농협에서 뭔가 작업을 잘못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일단 전화통화를 했고, 해당 건에 대해 은행 내부적으로 회의한 후 해결방법을 논의해본다고 했다.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을 위해 연이가 직접 은행으로 가기로 했다. 은행에도 신규가 있구나?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이며 커다란 실수에 얼마나 많이 혼이 났을까? 연이의 교행 꼬꼬마 시절이 문득 떠오르기 시작했다.


은행에 도착해 실수를 한 직원을 마주하고는 업무처리를 기다렸다. 무려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 신규이기에 느린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 제대로 처리했기를 바라며 말을 건넸다.


"잠시 15개 통장 5분 확인하겠습니다."

계좌에 따른 통장 인감을 빠르게 확인을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마무리되었다.

"OOO 계장님, 계장님 사수분인 OOO 대리님 계시죠? 제가 ■■초등학교 근무할 때 실수 많이 했는데, 그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힘내시고 다음 업무로 은행에 방문하게 되면 잘 처리 부탁드립니다."

연이는 어쩔 줄 몰라하는 신규 은행원의 꾸벅 인사를 뒤로하고 은행 문은 빠져나왔다.


'나도 큰 실수 참 많이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연이가 참 많이 성장했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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