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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n 05. 2022

[교행일기] #126. 인사고충

인사고충


칠흑 같은 이 동굴에 들어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학교로의 발걸음이 더디기만 했고, 그러한 발걸음은 머리로는 가기 싫은 이성의 끈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감정의 끈을 모두 무시한 채 묵묵히 학교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연이에게는 그나마 학교가 영화에 나올 법한 전경과 쾌활하게 웃는 어린 학생들과 그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을 보며 일하다가 힘들면 잠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걷는 교정이 있었다. 초임지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좋은 기억과 감정들이 어쩌면 그것이 예외적인 것이고 지금 느끼는 경험과 감정이 이곳에서 일하는 일반적인 감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그때의 기억들이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연이가 아프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정적으로 심한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정기인사가 있는 1월이니 당연히 움직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만의 하나 있다면 연이에게는 더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중간에 발령을 받아서 온다는 것은 그렇게 2년을 채우고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지내보고 알았다. 남들 움직일 때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몸을 훑고 가서 지금의 감정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체적 고통과 감정의 고통은 결이 다르고 나아가는 과정도 다르다. 코로나19로 찾아갈 수 없는 환경이 길어지면서 연이는 인사고충이 담긴 기나긴 글과 진단서를 비롯한 각종 관련 서류를 첨부하여 쪽지를 완성을 했으나 몇 시간째 전송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가 말았다가 하고 있었다. 보낸다고 인사담당자가 바빠서 다 읽지도 못할지도 모르는데, 연이만 고민하고 있었다. 큰 쉼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마우스 커서를 전송 버튼에 두고 질끈 눈을 감고 눌렀다. 인사담당자에게 보내는 것은 진짜 0.1초도 안 걸렸다. 그리고 10분 정도 뒤에 쪽지를 읽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답장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지만, 연이는 정기인사 때 꼭 움직이기를 희망했다.


12월의 끝자락이 연이가 머무는 학교에도 왔다. 그리고 연이도 그 학교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2년 3개월의 기나긴 열병 같은 이곳의 삶도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연이는 다른 곳에서의 업무를 기대하게 되었다.


칠흑 같은 동굴을 빠져나와 빛이 있는 곳에 나오니 연이가 그곳에서 겪었던 고통의 흔적들이 마음 이곳저곳에 남았다는 것을 나와 보니 보였다. 마지막 학교를 나오는 날 교문 앞에서 학교와 학교를 둘러싼 산 밑 전경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흐릿해지겠지만, 잊지는 못할 것 같았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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