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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16. 2022

[교행일기] #129. 졸보의 귀환

졸보의 귀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몸이 굳어버렸다. 아는 것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입은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연이는 졸보가 되었다. 


잘 알고 있는 지식인데, 수없이 하던 일이었는데, 며칠 째 말도 잘 안 나오고 일을 해도 자꾸 겉도는 기분이 뭘까?


잘 알고 있었는데...


연이는 최근 3개월 동안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환경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이곳으로 발령이 난 것도 이곳에서 하는 업무도 업무에 대한 자유도도 없이 그저 마감에 쫓기듯 그렇게 일을 했었다. 7년 차인 연이가 이렇게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안타까웠다. 


3개월 동안 참으로 암흑 속에 있는 동안 그저 이곳을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 것 같았다. 

'내가 왜?' '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그게 세상이란 곳인데, 연이는 너무 물러 터졌다. 


연이는 원래 졸보였다. 누구는 새가슴이라고 하고 누구는 겁쟁이라고 부르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누구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묵묵히 연이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좋았다. 그게 글쓰기였다. 글을 쓸 때면 여름에도 겨울의 한기를 가져다 쓸 수 있고, 한겨울에는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몸소 글로 풀어낼 수 있어 좋았다. 현실에서 현실에 없는 판타지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글의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글 속의 주인공과 숨을 같이 쉴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다쳤다는 것을 암흑 동굴 속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오는데, 마음이 쪼그라들며 그냥 눈물이 흘렀다.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컸나 보다. 엉덩이를 쭈쭈 차이며 마음의 달음질과 긴장감 속에서 일을 하던 연이가 생각이 났다. 이곳에서 2년 3개월을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지금의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연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그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웅크림이 연이의 마음의 생채기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아프다. 

몸에 난 상처보다 

더 아리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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