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Sep 12. 2022

[교행일기] #131.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며칠 째 그 일로 연이의 마음이 불편했다. 모두가 학생들을 위한 일인데도, 누군가는 그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 일이 터진 것을 연이가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학생용 책상·걸상·사물함의 내용연수가 만료가 된 것들을 교체하는 작업에 연이가 할 일은 나라장터를 통해 해당 물품 조달 구입과 이를 설치하는 업체와의 조율이었다. 나라장터 물품 구입은 지출업무 중 작업 단계가 여러 단계로 나누어져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다행히 두 번째 학교에서 수십 번의 구입을 해보고 연이만의 교행실무매뉴얼을 만들어놨기에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학생용 책상·걸상·사물함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물품이라 학기 중에는 교체하지 않는 게 관례다. 이는 교체를 위해 새 물품을 실은 대형 탑체와 교체한 헌 물품을 버리는 작업을 하는 폐기업체에 오는 대형 집게차와 트럭이 연이어 학교로 드나들기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기 중에 시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학기 중에도 교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날을 잡아 처리하곤 한다.


연이가 두 업체에 전화를 해보니 딱 맞는 날은 일요일밖에 없었다. 업체마다 전화를 해서 일정을 조율하고 시간을 꼭 맞춰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금요일 퇴근할 때 토요일 당직을 서는 당직전담실무원에게도 해당 일정을 알리고 교문을 개방해달라고 했다. 


일요일 아침 7시에 탑차가 오고 8시까지 모든 물품을 내린다고 해서 연이는 평일 출근시간보다 이른 8시까지 학교로 가기로 했다. 7시 30분이 되자 집을 나선 지 10분도 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운전 중이라 바로 받지 못하고 신호대기에 걸리자 무선이어폰을 귀에 끼고 받지 못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교문이 닫혀 있는데, 어쩔 거요?"

다짜고짜 짜증이 섞인 중년의 남자는 험악한 소리가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연이는 연신 죄송하다며 잠시만 기다리면 학교에서 문을 열어줄 거라 둘러대고 곧바로 당직전담실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직업무의 특성상 2교대를 하는데, 금요일에 부탁한 내용을 전달받지 못한 토요일 근무자가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투로 말을 내뱉었다.


꼬이기 시작한 일은 연이가 학교에 도착하고서부터 더 베베 틀어졌다.


9시쯤 설치업체에서 총괄담당자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설치하려고 몇 명이 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업체에서 일용근로자들을 고용한 것 같았다. 그중 업체에서 지시를 받은 사람이 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어디 설치하면 되죠?"


연이는 머리가 아파왔다. 총괄담당자랑 미팅도 여러 차례 했고, 설치 전날까지 신신당부하며 연이가 신경 써서 만들어놓은 설치장소까지 모두 해당 업체로 보내줬고, 걱정하지 말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를 보며 오늘의 일을 의심하지 않았다.


연이는 컴퓨터를 켜고 다시 출력해서 설치장소가 담긴 종이를 보며 대충 설명을 해주고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OO업체 총괄담당자는 언제 오죠?"

"간단하게 설치만 하면 된대서 왔어요. 저도 모르죠."

아뿔싸, 연이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이 멍해졌다. 총괄담당자 번호를 누르고 세 차례 통화음이 들렸다. 


'설마 안 받는 것은 아니겠지?'

여섯 번 열 번이 넘어가면서 '설마'는 '확신'이 되어버렸다.

연이는 총괄담당자가 와서 설치를 종료하면 설치된 물품이 제대로 들어갔나 확인을 하고 폐기할 물품을 안전한 장소에 빼놓은 것을 확인하고 폐기업체가 오면 잘 실어가는지만 확인하면 될 터인데, 모든 게 망했다.


연이에게 업체에서 고용한 직원이 계속해서 물어댔고, 어찌어찌해서 설치까지는 끝냈다. 하지만 시간은 12시가 지나 1시를 향하고 있었다. 물도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땀이 셔츠를 적셨다.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업체에서 고용한 직원들은 교문을 빠져나갔다. 


정신없는 일요일 오전을 마치고 행정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총괄담당자였다.

"뭐 하는 거죠?"

연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그대로 휴대폰의 수화 부분을 타고 상대방의 귀에 흘러갔다. 연이가 뱉은 말의 온도는 영하 100도씨였다.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을 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연이의 냉랭한 말에 그쪽에서 화를 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연이도 지지 않았다. 상대방이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 화를 내니, 연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들끓었다.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그 화는 정말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30분, 40분이 흘렀다. 그러고 나니 눈물이 났다.


그렇게 분노에 찬 연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힘든 기억은 많았다. 하지만, 운 적은 없었다. 연이의 분노가 눈물을 만났지만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때 즈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실장님이었다.

"연주무관님, 책걸상·사물함 설치는 잘 되고 있지?"

"......"

연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울음에 가려 말이 목구멍으로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거죠?"

연이의 무음에 실장님은 다시 물었다.


연이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실장님은 연이에게 자신의 8급 시절 얘기를 하나 해줬다. 10분의 짧은 통화였지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분노는 어느새 고요해졌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연주무관님! 푹푹 찌는데, 마저 수고해줘요."


푹푹 찌는 더위는 사람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을 맺히게 하고 사람의 마음의 여유를 둘 여력을 사라지게 한다.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 집으로 운전하고 있는데, 문자 하나 도착했다.


"오늘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주무관님! 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매거진의 이전글 [교행일기] #130. 적응기간의 오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