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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Dec 24. 2022

[교행일기] #134. 12월의 "장업사"

12월의 장업사


연이는 업무를 하는 중간중간 교육청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의 정보통에 따르면 오후 3시가 되면 발령이 뜰지도 모른다고 했다. 연이가 근무한 지도 햇수로 7년째였기에 금요일 오후 3시는 설득력이 있기도 했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 인사는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었다. 


교육청 전 직원의 메신저의 단체방의 글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평소와 다른 대화의 간헐적인 끊김은 1월의 대규모 정기인사에 떨고 있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발령이 뜨면 대화창이 쉼 없이 빠르게 대화를 쏟아내겠지만, 지금은 그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그 엑셀파일 하나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오후 2시 59분 59초를 넘기며 3시가 되자 소문으로만 날지 모른다는 발령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기약이 없었다. 인사발령은 그날 오전에 인사위원회가 열리고 나면 오후에 발령이 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최종 결재가 나는 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 여전히 안갯속 걸음걸이였다.


대부분 2년마다 한 번은 움직여야 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보니 다음 근무지가 어디인지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어떤 업무를 맡을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될지 결국 연이가 처음 발령을 받아 느끼던 그 "장업사"가 기억이 났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업무, 새로운 사람


발령을 많이 받다 보면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것은 몇 주면 가능하고, 새로운 업무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한 적응은 정말 발령의 횟수가 많건 적건간에 힘듦의 정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사람은 그만큼 그들에게도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오후 3시의 약속시간을 정한 것도 아닌데, 메신저 창에는 성토의 글이 간간이 올라왔다. 그러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최초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발령이 떴다."


모든 교육청 직원이 한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다 보니 접속마비가 일어났고, 대부분은 튕겼지만, 몇몇은 접속이 되어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파일들은 순식간에 메신저 창을 타고 발 없는 인사발령 파일이 사람에 사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일시적으로 대화창은 말이 없어졌다. 연이도 그 인사파일을 다운 받았다. 


엑셀파일이 열리는 그 짧은 몇 초가 떨렸다. 환희와 한숨이 섞이고 온몸의 털이 바짝 서기도 했다가 가라앉으며 첫 발령이 있었을 그때가 눈앞에 다가왔다.


본청 발령에 이어 교육지원청 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연이는 다른 교육지원청이 순차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왜 안 뜰까? 설마 연이가 합격한 것이 아닌 모두가 꿈인 것일까?'

자정 12시가 되어 차창 너머로 보인 불빛들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런 암울한 생각이 연이의 머릿속을 혼잡하게 하고 있었다. 다들 발령을 받아 단체카톡방에 그 학교가 어딘지 검색을 하거나 벌써 전화를 했다는 동기까지 쉴 새 없이 톡이 올라와 있는 것을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글은 연이를 기다리지 않았다. 밤새 수만 가지의 생각에 이른 연이는 그저 머릿속이 넉다운이 된 것 같았다. 다음날 늦은 오후가 되고서야 인사 알림이 떴다. 넉다운이 되어 심장박동 수조차 아주 느릿하게 유지하던 심장이 갑자기 RPM을 올리고 있었다. 인사파일이 열리는 그 몇 초가 왜 이리 길고 느린지 연이의 심장은 요동을 넘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재빨리 컨틀롤 F를 눌러 연이의 이름을 검색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아찔한 기억이 새록새록 진한 커피 향처럼 연이의 심장에 타고 흘렀다. 2023년 1월 1일 자 인사발령 파일이 열렸다. 그때와 다르게 6급 이하만 교육지원청 인사파일에 뜨기에 그때처럼 뜨지 않는 아찔한 경험은 다시 하고 싶어도 못하겠지만, 연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사발령인데도 그렇게 떨렸다. 인사파일이 열자마자 아는 사람들의 이름과 근무지를 검색했다. 


모든 결과가 오픈이 되었다. 대화창에는 탄성과 환희보다는 성토의 글이 주를 이뤘다. 인사발령이란 것이 그런 것임을 그들도 익히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단계이기에 그들을 위로하는 말이 오갔다. 


모두가 만족하는 인사발령이란 없다는 것을 다들 알지만, 누구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일 테고, 누구에게는 크리스마스 악몽일 것이다. 연이가 갑자기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연이도 그 환희와 탄성, 성토와 울컥의 반복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 오랫동안 그 파일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학기 초부터 같이 일한 주무관님들에게 연이는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영문을 알지 못한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연이에게 물었다.

"어디 가려고요?"

이곳을 지나쳐간 많은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연이도 어쩌면 그들과 같은 결과가 될까 봐 걱정을 연이 자신조차도 많이 했다. 그 나쁜 마음들이 연이는 떨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남아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번 발령을 보면서 그 발령 대상자 안에 연이가 없음을 감사했다. 무서웠다고 해야 하나 두려웠다고 해야 하나 연이의 마음은 딱 하나로 모으기는 어려웠지만, 그들에게 답을 했다.


"나쁜 마음을 먹었었어요. 그 마음이 사라지나 봐요."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학교종이 울렸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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