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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Dec 03. 2022

[교행일기] #133. 고요한 시간

고요한 시간


고요해진 점심시간이다.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고 행정실에 연이 혼자 남는다. 연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를 한다.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며 연이에 대한 말을 하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연이가 점심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먹을 뿐이다. 어쩔 때는 시리얼, 다른 때는 과일, 또 다른 때는 미숫가루 쉐키 쉐키. 그렇게 간단한 점심을 먹기 시작한 것이 벌써 4년이 넘어버렸다. 손가락으로 세고 나니 많아 보였다. 


연이가 점심을 간단히 먹기 시작한 때는 2018년 10월 두 번째 학교 때부터이다. 처음 몇 번은 점심을 먹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장님과 연이만이 근무하는 도심 속 작은 학교였기에 업무량보다는 절대적으로 업무의 가짓수가 많아졌다. 이 일을 했다 저 일을 했다 연이 혼자 처리해야 할 업무의 종류가 많아 정신없었다. 연이는 학창 시절에도 시험기간에는 점심을 대폭 줄였었다. 


이유는 바로 '잠' 때문이다. 


배가 부르면 누구나 졸리다. 어느 지방 사투리에 졸릴 때 잠이 온다란 말을 한다. 진짜 연이에게는 잠이 찾아온다. 선천적으로 소화기능이 약하게 태어나서 많은 양의 음식을 처리하려면 모든 피를 위로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잠시 잠을 재우는 마법에 걸리는 것처럼 배가 부르다 싶으면 먹지 않아야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딱 15분만 잠에 빠지면 금세 말짱해졌다. 학창 시절에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도 15분은 할애가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안 되면 점심을 정말 극도로 줄이면 될 일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곳에 들어와서 일할 때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교육행정직으로 행정실에 근무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숫자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업무의 연속성을 지닌 이곳에서는 문제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으로. 바로 그날 그 일이 벌어졌다.


초임지와 달리 엄청난 업무의 수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점심을 먹어서 그런 건지 여하튼 문제가 발생했다. 업체에 줄 대금을 바꾸어 지급을 해버렸다. 분명 연이는 지출 업체를 조회를 하고 승낙사항까지 처리하고 출력을 했고 서류를 갖추어 지출을 했다. 분명 눈은 뜨고 있었고, 손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지출을 다 나가고 아무래도 몽롱한 정신을 잡으러 바깥공기를 아주 잠깐 쐬러 나갔다. 


'점심을 적게 먹어도 졸리는 이유가 뭘까?'

불현듯 좀 전에 나갔던 지출이 생각이 났다. 설마 아니겠지 하며 서둘러 행정실로 향했다. 지출서류를 검토하면서 연이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업체를 바꾸어 지출이 되었다. 큰일이다. 어떻게 수습하지 하면서 두뇌를 풀가동을 했다. 두 업체에 일단 전화를 하고 대금을 돌려받기로 하고 반납결의를 한 후 다시 지출하면 될 일이었다. 한 업체는 다행히 바로 입금해준다고 했지만 다른 업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계속 걸고 있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붙잡고 '제발 제발'을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받지 않았다.


이 일만 매달릴 수 없어서 실장님에게 보고 하고 일단 입금받은 업체부터 반납결의를 진행을 했다. 그리고 다른 업무를 하면서 계속 전화를 했지만, 가망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혹시나 그 업체에서 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받아 얘기를 해야 끝날 것 같았다. 1시간 후 즈음 도저히 화장실을 안 가고는 버티지 못했다. 행정실 문을 열고 건물 끝에 위치한 화장실까지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움직였다. 등에 흐른 땀과 이마에 흐른 땀이 몸은 노곤하게 했고 머리는 찝찝하게 했다. 


건물 뒤로 보이는 산에는 어느새 가을 단풍이 나무마다 색을 바꾸고 있었다. 녹색 푸르름이 있을 때 왔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행정실로 옮기는 찰나에 문득 들고 있었다. 


실장님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연이에게 눈짓을 하며 전화를 돌려주었다. 연이는 후다닥 자리로 뛰어 돌아가 앉았다. 전화벨이 울렸고, 업체에 사정사정을 했다. 받을 돈을 빼고 주겠다고 했다. 연이는 그렇게 해도 되나 했지만, 깔끔하게 전액 반납을 받고 다시 지출해서 드리겠다고 사정을 했다. 연이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업체에서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달라는 말과 함께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업체만 잘 조회를 해서 제대로 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걱정과 초조함을 느끼지 않았을 텐데, 바보짓을 해버리는 바람에 연이는 사서 고생을 했다. 


그날 이후로 연이는 점심을 최대한 간단히 먹기로 했다. 간단히 먹으니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잠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퇴근이 다가오니 허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몇 개월이 흐르니 점점 익숙해졌고, 저녁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행정실 직원들의 담화가 행정실 너머에서 타고 들어온다. 연이만의 고요한 시간도 마무리되고 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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