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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May 05. 2023

[교행일기] #136. 깨져버린 마음의 파편들

깨져버린 마음의 파편들


멍하니 앉아 있다. 초점이 없는 눈은 응시하는 곳이 없다. 

이곳으로 온 지도 이제 1년이 넘어가지만 좀처럼 안정화가 되지 않았다.

오고 싶어서 오는 사람은 없겠지만, 끌려오면 그 상황이 달라진다. 그것도 그전 학교에서 연이가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남았다. 초등학교와 다른 중학교는 선생님도 근로자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든 게 초등학교에만 있었던 연이에게는 낯설었다. 처음 A학교에 신규로 배정받아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면, 벌써 7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런 마음보다 매일 같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처음에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저 학교를 옮기면 으레 있는 적응기간이 있듯 그렇게 여기서도 적응이 될 줄 알았다. 


그건 연이의 크나큰 패착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글을 썼던 이유도 당장은 연이와 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주무관님들을 다독이기 위해서였지만, 훗날 지금과 같은 마음이 될까 봐 미래의 연이를 위해 썼었다. 


과거의 연이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교행일기의 전편과 멘탈트레이닝을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시중 도서 중 베스트셀러들이 마음을 위로하는 책들로 도배가 되는 시점이기도 한 이유가 아무래도 다들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연이를 지탱해 주던 많은 이들의 따스함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처음 겪는 일들이 빵빵 터졌다. 예전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이 학교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일이 일을 부르고 금방 끝날 일들이 계속 되새김질하듯 연이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바빠진 마음은 여유를 없게 만들었다. 


따스함이 빠져나간 마음의 자리에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메마른 땅이 되어버렸다. 쩍쩍 갈라진 마음의 대지는 모래바람이 일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연이는 신규 때 들던 의원면직의 마음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자꾸 뭔가 등 떠밀려 절벽의 한 구석으로 몰리는 것을 직감했다. 위험을 감지한 마음은 몸을 경직되게 하고 실수가 잦아졌다. 그 실수가 연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모두 연이가 처리할 일만 남게 되어버렸다. 그 모든 실수를 연이의 탓으로 돌리는 상황이 싫을 뿐이었다.


코로나로 만나지 못했던 모임이 하나 둘 잡히면서 그곳에 가면 바빠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때만을 기다렸다. 반가운 얼굴에 한동안 쓰지 않았던 미소의 얼굴 근육이 무리하게 움직였다. 오랜만에 웃으니 참 좋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그들과 헤어지고 다음 날 다시 아침이 오자 어제의 기억이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이 아려왔다. 마음을 얼리지 않으면 이곳에서 견딜 수 없는 듯했다. 메마른 마음의 대지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마음의 대지에 있던 따스함을 먹고 자란 풀들은 이미 말라버렸다. 대지 가운데 홀로 버티고 있는 큰나무도 잎이 떨어진 지 오래다. 고목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따스한 황금빛과 푸른빛이 돌던 마음의 대지에는 이제 갈색 빛과 회색 빛만 남아 있었다. 


나약하고 연약한 마음은 따스함으로 다른 이들을 품어줬지만, 따스함이 사라진 지금은 연이를 지키기 위해 모진 말을 사람들에게 할 때가 있었다. 그래야 돌아가는 상황도 싫었다. 더욱더 마음을 아린 것은 그런 상황이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따스함이 충만한 마음이 없어지면 글을 쓸 수 없다. 아니 글이 메말라진다. 잿빛 글이 되어버린다. 누구의 마음의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고 따스한 햇살을 머금게 해 줄 수 없다. 그게 연이는 가장 두렵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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