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Jul 22. 2021

[교행일기] #18. 외계어로 가득한 업무분장

전화 돌릴 때 필요한 업무분장

이 업무는 누가 담당하지?


연이는 전화를 받다 보니 나름 공통점은 찾아냈지만, 여전히 어디로 전화를 돌려줘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었다. 실장님은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이런 전화가 오면 실장님에게 돌려줘야 하고, 차석 주무관님인 김 주무관님은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니 그런 종류의 전화가 오면 돌려주면 되는 그런 요령이 필요했다.


연이는 자신보다 1년을 넘게 먼저 행정실에 들어온 사회복무요원에게 전화를 어떻게 돌려주고 있는지 살짝 물어봤다. 사회복무요원이 입이 다물어졌다. 생각하는 중인지 입꼬리가 살짝 왼쪽 오른쪽 오르락내리락했다. 잠시 후 사회복무요원의 입이 떨어졌다.


"연 주무관님, 그게 사실 저도 1년 동안 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잘못 돌려준 적도 많았고, 지금도 정답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업체 전화는 모두 차석 주무관님에게, 학생 관련은 교무실로, 민원은 삼석 주무관님에게."


뭔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일단 업체 전화를 모두 차석 주무관님인 김 주무관님에게 돌린다고 하는 것을 보면 가끔은 연이 자신을 찾는 전화를 김 주무관님에 돌려줄 때가 있었다. 그리고 학생 관련을 모두 교무실로 돌려줬던 전화가 교무실에서 연이를 찾는 전화로 연결이 될 때도 있었다.


궁금증이 폭발한 연이는 대화창을 열었다.

"OO동기님, 궁금한 게 있어요. 전화를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뭔 방법이 있을까요?"

10월에 발령 난 OO동기는 고민도 없이 바로 글을 대화창에 띄웠다.

"저도 고민 많았는데, 업무분장을 알아야 해요. OO초도 업무분장을 했을 거예요. 그걸 일단 출력해서 옆에 놓고 전화가 오면 헷갈린다 싶으면 누굴 찾는지 물어보는 게 가장 좋아요."


그래서 업무분장을 문서등록대장에서 검색을 했다.



실장: 예산, 계약, 학교운영위원회, 지방공무원 인사 및 복무관리

차석: 지출(수익자 지출 제외), 물품·재산, 발전기금, 교육통계, 학교회계 집행현황관리, 자금운용, 보안, 정보공시

삼석: 급여, 세입, 세외, 수익자 지출, 민원, 기록물, 사회복무요원 관리, 차량요일제, 보안점검부 관리



'이런, 어쩌지. 봐도 모르겠다. 한글이긴 하지만 뜻을 알 수 없는 외계어나 다름없는 업무분장에 드문드문 의미를 알고 있는 단어가 섞여 있는 기분. 하~~~'


연이는 한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생각을 해봤다. 행정실에서 1년을 있은 사회복무요원조차 그 업무를 파악할 수 없다면, 나름 전화를 돌리는 패턴을 분석해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사회복무요원이 알려준 완벽하지 않은 비법에 연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더해서 작성하고 동기가 알려준 업무분장을 분석해서 일단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전화 돌릴 때 필요한 업무분장


연이는 공시생 시절 때부터 헷갈리는 것만 모아 분석해 자신만의 정리를 했다. 그게 행정실에서도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업체에서 전화가 오면 어떤 업체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대부분은 김 주무관님을 찾았지만, 어떨 때는 실장님을 찾을 때도 있었고, 연이를 찾을 때도 있었다. 학부모가 전화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과후비 납입 관련 전화나 민원 관련 전화는 연이 전화였지만, 교육 관련 전화가 행정실 쪽으로 잘못 오면 교무실로 연결해주었다.


모든 상황을 다 적어놓을 수 없어서 딱 헷갈리는 것만 적어놓으니 한결 전화받기가 쉬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전화는 아는 게 많아야 점점 쉬워지나 보다. 아직도 모르는 업무도 많고 알아야 할 자잘한 사실들이 많았다. 조금 더 알게 되면 위에 작성해서 붙여 놓은 것도 변화가 있을 것이란 걸 누구보다 연이가 잘 알았다.


연이야~~~ 오늘도 힘내자. 외계어를 완벽 번역하는 날까지.

이전 17화 [교행일기] #17. 얼떨떨한 신규에게 꼭 필요한 그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