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도 EVPN(원격업무)
신기방기한 EVPN 탐험
연이는 드디어 첫 급여 작업을 끝냈다. 실장님에게 서면결재를 받고 결재판을 오른쪽 허리춤에 얹고 행정실을 나섰다. 마지막 관문을 넘기 위해 2층으로 향했다. 교장선생님에게 결재를 받아야 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첫 결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2층에 다 올라갔을 때 중앙 복도에서 선생님 두 분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귀를 잡아끄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 선생님, 공문 내려왔던데 처리하셨어요?"
"아, 그거 원격으로 봤는데, 영 작성하기 힘들어서 행정실에 물어보려고 나왔어요."
'원격으로 봤다고, 공문을'
일단 궁금함이 밀려왔지만, 교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교장선생님! 급여 결재 맡으러 왔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연이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교장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의 햇빛은 실안의 공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교장실의 위압적일 것 같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교장실 방문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낯섦이 덜해졌다랄까 교장선생님은 테이블에 있던 사탕을 한 움큼 집고는 손을 위아래로 두어 번 짧게 흔들었다. 어서 손을 내놓으라는 듯했다. 연이는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그사이 결재를 마치고는 간단히 그간 행정실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다.
"아직 얼떨떨합니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떨떨한 게 맞았다. 그게 정상이라고 교장선생님은 말씀해주셨다. 잠시 뭔가 상념이 다가왔는지 교장선생님의 입을 잠시 닫고는 고개가 햇빛이 나는 창가 쪽으로 돌아갔다.
"초임 시절이 생각이 나. 퇴직할 때가 다가와서 그런가. 나도 교사 처음 임용되고 발령받던 때가 생각이 나네. 아직도 그 기억만큼은 또렷해. 익숙해질 거야."
교장선생님은 아들에게 들려주듯 얘기를 이어가다 끊어지다 상념에 잠시 잠기다 이내 말을 마쳤다. 뭔가 연이를 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았다. 한 움큼 받아 든 사탕을 후리스 주머니에 넣고는 결재판을 옆에 끼고 깍듯이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첫 결재는 그렇게 무사히 끝났다. 교장실 바로 돌아 교무실 쪽으로 가는 복도에 비친 햇빛이 따사로워 보였다. 복도의 한기와 대비되는 색조의 빛은 그다지 따사로움을 품지 못했다. 입에서 나온 따뜻한 김은 복도의 한기와 만나 아주 잠시 눈에 보이는 하얀 연기가 되었다 이내 사라졌다. 복도에 있던 선생님도 어느새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햇살이 닿지 않는 창문과 멀리 떨어진 곳은 한기들 차지가 되었다.
아 맞다. 아까 선생님끼리 나눴던 그 귀가 쫑긋 할 만한 얘기가 생각이 났다. 원격으로 공문을 본다는 얘기.
점심에 김 주무관님에게 물으니 EVPN이라고 원격업무지원이라고 있다고 했다. 연이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이스 인증서만 있으면 누구나 다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중에는 학교에서 처리한 업무를 저녁에 잠시 보기 위해 EVPN(원격업무지원 시스템)을 3단 결재(실장-교장)를 상신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8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행정실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나이스, 에듀파인을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루려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나름 눈에 익혀두고 싶었던 바람도 있었다. 집에서도 업무를 한다기보다 공부에서 말하면 했던 일에 대한 복습용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예습용으로 EVPN을 이용을 했다. 휴일에 행정실이 아닌 집에서 업무를 보던 화면을 열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름 신기하고 놀라웠다.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신규에게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동기들에게 신청을 권유했다. 이미 이용하는 동기도 있었고 모르던 동기들도 있었다.
이때 연이는 훗날 벌어질 일을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