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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19. 2021

[교행일기] #15.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한 초과근무

내 세상이 된 토요일 행정실

초과근무 상신


연이는 간신히 급여 작업을 마무리했지만, 일주일간 거의 급여만 하느라 다른 부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1월 급여는 이 주무관님이 급여 엑셀 파일을 완성해 줬고, 신규 후임자인 연이를 위해 업무차 출장을 나와 줬기에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2월 급여부터는 오로지 혼자 해내야 해서 1월 초인데도 연이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나름의 매뉴얼을 정리해놓지 않으면 2월 급여를 할 때 허둥지둥하다 내 손에 달린 교직원 급여를 주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이지만, 내일 나와서 일주일간 일어났던 일을 곰곰이 되짚어 보며 일을 하겠다고 하니 김 주무관님이 초과근무 상신하라고 했다. 순간 멈칫하니까 김 주무관님의 연이의 생각을 읽었는지 내 자리로 와서 상신하는 방법을 빠르게 보여줬다. 


'언제쯤 저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을까?'

연이의 눈에는 김 주무관님이 산을 아주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는 날다람쥐처럼 보였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산의 곳곳을 알기에 어떻게 발을 디뎌야 되는지 아는 그런 존재. 언젠가는 연이도 후임자에게 그렇게 가르쳐줄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두어 번 더 어딜 어떻게 누르고 기입하는지 입으로 중얼중얼거리며 눈에 익도록 했다. 




내 세상이 된 행정실, 1월 9일 토요일


연이는 김밥집을 들러 이번에는 김밥 두 줄을 샀다. 한 줄씩 싸 달라고 부탁을 했다. 토요일 파랑버스는 연이가 주중에 타고 가는 버스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배차시간이 긴 만큼 버스가 없는지 그 사이를 아주 쏜살같이 질주했다. 중간중간 내리는 사람도 없고 타는 사람도 없는 정류장은 브레이크가 아닌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했다. 버스기사의 좌석은 쿠션이 있는지 버스가 굴곡진 도로를 따라 달려가면 그 진폭에 맞춰 0.1초씩 늘리게 버퍼링 걸린 것처럼 움직였다. 


대형마트 앞 버스정류장에 내린 연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매었고, 10년 동안 공시생 생활을 하면서도 매고 다녔던  가방의 끈을 부여잡았다. 처음 하는 일이지만, 제대로 하고 싶었고, 인정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이 먹고 들어와서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1인분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가며 일하지만, 언젠가는 꼭 1인분이라도 해내고 말겠다는 생각 했다.


멀리서 학교 쪽으로 다가오면서 보니 교문은 닫혀있는 듯했다. 큰일 났다. 당직기사님에게 연이는 초과근무를 토요일에 한다고 얘기를 당연히 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은 5년 후의 연이나 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저 일하러 나오면 당연히 문이 열렸겠지 했다. 어리석었다. 


그래도 교문까지 가면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교문에 바짝 붙었다. 교문을 닫혀 있었다. 하지만, 안쪽에 쇠사슬의 걸쇠는 풀어져 있었다. 묵직한 교문을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밀어도 버거울 정도로 굴러가지 않았다. 오래되었는지 삐삐이익 소리가 났다. 


홀쭉이 거울에 연이의 모습이 비칠랑말랑 했다. 행정실 쪽으로 차가 진입을 못하도록 커다란 돌화분 두 개가 막고 있었다. 그것을 끼고 도니 거울에 비친 연이는 금세 연이를 따라 사라졌다. 건물 현관의 유리문을 잡아당겼다. 이 문만 지나가면 바로 행정실이 왼쪽에 있었다. 덜컹덜컹. 잠겨있었다. 현관을 이곳저곳을 보며 들어가려고 시도를 했다. 이것을 어찌 봤는지 하얀 털이 구레나릇부터 턱까지 살짝 솟은 나이 드신 어르신이 갈색 슬리퍼를 끌며 연이가 서 있는 유리문 안쪽으로 다가왔다.


"연 주무관인가?"

어르신은 연이를 알아봤다. 자신을 어찌 알았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니 김 주무관님이 퇴근하면서 내일 연이가 나온다고 보고를 했다고 했다. 고마웠다. 교문의 걸쇠도 그래서 살짝 빼둔 것이라고. OO초등학교 당직기사님 전화번호도 모르고 당장 초등학교로 걸려고 해도 대표번호를 홈페이지 들어가서 찾아야 할 판이었는데, 고마운 일이었다. 행정실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커피 한 잔을 진하게 타서 자리에 앉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이 났다. 어제 초과근무 상신하는 방법을 매뉴얼화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덧붙여 당직기사님에게도 꼭 근무를 한다고 미리 말해놓는 것도 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다다르자 가방에 있는 김밥이 생각이 났다. 한 줄을 들고 당직실로 들어갔다. 


"기사님~~~ 이거요?"

당직기사님은 김밥 한 줄과 냉장고에서 들고 온 비타500을 드리면서 전화번호를 여쭤봤다. 바로 전화를 걸어 당직기사님 전화에 연이 이름을 저장해드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자주 토요일에 나와야 할 것 같아요. 많이는 아니고요. 12시가 되면 갈 테니 조금만 양해 부탁드려요."


연이가 작성한 첫 교행 실무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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