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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20. 2021

[교행일기] #16. 알쏭달쏭 매일 맞추기 놀이, 시재

교행업무의 기본, 시재 확인

시재 확인? 시제 확인?


"연 주무관님! 시재가 안 맞아요."

"네?"

연이는 김 주무관님의 말은 들었지만 '시제(?)'가 무엇인지, 아니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시제(?)'라는 말을 한글에서는 거의 쓰임새가 없는 단어이다. 영문법에서는 과거시제, 현재시제, 미래시제. 요런 말로 쓰이기는 하지만, 연이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연이는 모르면 눈만 깜빡이는 버릇이 있다. 모르면 물어봐야 하는데, 뇌가 멈추는지 입밖으로 말을 내뱉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매일 시재를 맞춰야 해요."


연이는 김 주무관님이 시재인지 시제인지 발음도 헷갈리고 혼동되는 단어의 그것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아마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보면 두 개를 비교해서 무엇인가 다르다는 소리임을 공시생 시절 '맞추다 vs 맞히다'를 공부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맞추는지는 이제 9일 된 연이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초과근무 전날 이 주무관님을 통해 들은 바로는 통장의 금액과 에듀파인 상의 금액이 일치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통장의 금액은 뱅킹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고, 에듀파인상의 금액은 각종 현금출납부 쪽에서 보면 된다고 했다.


대화창에 빠르게 적어내려간 이 주무관님의 글을 한글에 복사하여 인쇄를 하였다. 연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일에 대한 실마리는 찾은 것 같았다. 쿠킹포일 살짝 벗겨 김밥을 입에 물고 4B연필을 어제 인쇄한 이 주무관님의 대화내용에 궁금한 부분을 적고 밑줄을 긋고는 귀에 살짝 올리며 인터넷뱅킹 사이트에서 1월 1일부터 9일까지의 돈이 들고 나는 입출금내역서를 뽑기 시작했다. 에듀파인에서도 각종 현금출납부를 뽑기 위해 인쇄버튼을 누르자 복사기는 일을 하기 위해 예열음인 웅~~~ 하더니 곧 종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김밥을 중앙테이블로 들고 갔다. 한 쪽에는 통장 입출금내역서, 다른 한 쪽에는 에듀파인 현금출납부를 놓고 하나씩 체크를 했다. 


통장과 에듀파인 상의 차이나는 부분을 빨간색 네임펜으로 체크를 하고 차이나는 금액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금액은 60원, 180원, 540원이 차이가 났다. 연이는 공통된 차이가 보였다. 6배수라는 공통점.


4B연필을 손바닥에 콩콩 두드리며, 6배수가 차이나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만 알아낸 체 이것은 마무리하기로 했다. 월요일에 와서 이 주무관님이나 동기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미진했던 서류들을 챙기고 정리를 했다. 



주말의 고요한 학교, 아늑한 행정실


김밥이 어느새 사라지고 쿠킹포일만 책상 위 한쪽에 찌그러져 있었다.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따라 자리로 돌아와 행정실 밖이 보이는 투명한 낮은 창가쪽을 바라보았다. 주중에는 학생들의 신나서 뛰어놀며 웃고 학생끼리 다투어 울고 그런 학생들을 꾸짖는 선생님들의 타이르는 소리가 섞여 있어 활기찼다.  주말의 학교는 주중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조용하고 아늑했다. 주중에는 쉼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과 모든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와 같이 독자적인 생각보다는 처리해야하고 마감일이 있는 업무만 했다. 주위를 볼 수 없는 경주마와 같이 달리던 곳과 달리 자율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한 주말이 연이에게는 꼭 필요했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과 주중을 위해 달릴 수 있는 기름칠하고 정비하는 하루, 그 하루가 소중했다.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오래 초과근무를 하면 당직기사님도 근무를 하시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이쯤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행정실을 나와 교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햇살이 쫙 비치는 아늑한 길이었다. OO초등학교의 보석같은 길이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길을 터덜터덜 몸의 진동을 받고 내려오다보면 점점 행정실에서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연이의 심장도 햇빛을 받아 그 진동에 맞춰졌다.





5년 후 연이가 들려주는 시재 관련 이야기

시재일까? 시제일까?

대체 시재는 무엇인데 회계관련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도 매일같이 확인하고 또 검증하는 것일까?


時(때 시), 在(있을 재)

갑자기 한자가 나오니 덜컥 겁부터 나지요?

교행직 업무를 할 때 한자를 많이 알면 도움이 많이 되지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영어 애플을 보면 사과를 바로 알 수 있듯이, 그저 그렇게 시재를 들으면 다음 설명하는 뜻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왜일까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자. 처음 하는 일에는 '왜'보다 '아'가 더 맞다. 기존에 해오던 것을 알아야 업무에 속도가 붙는다.


학교에서 정기적인 종합감사, 수시로 오는 기강감사, 보안감사가 오면 감사관이 가장 먼저 달라고 해서 보는 것이 시재확인서다. 그토록 중요하다. 그리고 기본이다.


말이 어려워서 그러지 우리도 다 아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돈을 쓸 때는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면 돈이 통장에 있는지만 알면 되지만, 가계부를 쓴다면 통장에 있는 돈을 확인하고 돈을 사용하고 그 사용한 돈을 가계부에 적어서 통장에 있는 돈과 장부상 있는 돈이 맞추는 작업, 그게 시재다. 다른 게 없다. 단지 통장이 여러 개 있으면 그것을 다 더한 금액과 장부상 금액이 맞으면 시재가 맞다고 한다.


간단하죠? 그런데 이게 가장 어려울 수도 있답니다.


첫 실장님이 만들어 준 양식에 예시로 금액을 넣은 시재확인서(오해금지, 이렇게 금액이 적지 않아요)
이전 15화 [교행일기] #15.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한 초과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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