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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03. 2021

[교행일기] #30.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언 땅에 새싹은 돋고


새로 온 실무사는 연이가 적응에 걸린 4개월을 단 며칠 만에 행정실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녹아들었다. 행정실의 분위기는 고요한 적막에 키보드의 타자 치는 소리와 마우스의 클릭 소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실무사님이 온 이후 살짝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을 대할 때 그분의 상냥한 웃음이 다른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와 행정실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바꿔줬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반복되니 행정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실장님은 실무사님에게도 동일하게 '주무관'으로 부르면서 호칭에 혼선이 생겼다. 성이 같았다. 김 주무관님이 2명이 되었다. 실장님이 '김 주무관'이라고 하면 연이를 처음 맞이해준 '김 주무관님'이었고, 실장님이 '김 주무관님'이라고 살짝 님을 길게 빼면 새로 들어온 실무사님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이에게는 둘 다 '김 주무관님'이었기에 한참을 고민했다.


관행상 '성 씨 + 주무관'으로 부르는 것이었기에, 이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성과 이름을 모두 말하고 주무관님을 붙여 부를 수 있었지만, 급하게 부를 때는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연이는 고민이 되었다. 틀을 깰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시도였고, 혼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성 씨 대신 '이름 + 주무관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OO주무관님~~~ △△주무관님~~~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그들도 연이가 부르는 소리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나름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OO초등학교 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경쾌하고 목소리에 들으면 귀에 쏙쏙 한 자 한 자 오롯이 다 들리는 전화받는 기법은 범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실무사님이 전직 중 하나가 콜센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했다. 연이에게 가장 어려운 전화받기가 그녀의 직업 중에 하나였다니 놀라웠다. 경외심에 찬 눈으로 꼭 배우고 싶었다. 두렵지 않게 전화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무관님~~~ 전화받는 법 좀 전수해 주세요."

갑작스러운 연이의 부탁에 처음에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전화를 받을 때는 도레미파솔 솔톤으로 받아야 해요."


낮은 저음의 연이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도레미파솔 솔 솔 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주무관님의 밝은 성격과 유쾌한 말솜씨로 행정실은 점점 밝아졌다. 블라인드를 내리면 시커먼 어둠이 행정실을 가두어 행정실의 분위기는 항상 적막했다. 그런 메마른 행정실에 단비 같이 어둠이 밝음을 만나 몇 개월 만에 행정실은 처음 연이가 발령받았을 때와 참 많이 변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연이의 마음도 행정실 밖의 5월의 싱그러움을 닮아가고 있었다.


연이는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실수를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계속 떨어지는 꿈을 꾸지 않았다. 연이가 마음으로 약속했던 한 달이 다가오고 있었다. 실무사님은 학교에서 일해본 경력이 없었기에 조금이나 행정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떠나야겠다는 그 시간이 왔다. 그런데, △△주무관님은 근무한 지 며칠 만에 완벽히 적응을 했다.


돌이켜보면 연이는 △△주무관님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함께 한 게 아니라 △△주무관님이 연이를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 되었다. 떨어지는 꿈도 꾸지 않고 학교에 올 때 느꼈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이 죄어오고 식은땀이 나는 일이 현격히 줄어들어 언제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10년 동안 58번의 각종 공무원 시험을 보고 57번을 떨어졌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연이가 잡았던 것처럼 연이에게는 열정이 있었다. 그동안 그 열정을 까먹고 있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열정적으로 해결하고 처리하려던 연이가 그동안 마음이 얼어 눈의 총기와 빛을 잃어 잊고 있었다. 업무에 여전히 힘든 것은 콜센터와 이 주무관님에게 물어 다시는 같은 것으로 묻지 않으려고 실무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여전히 실수를 하는 것은 실장님의 꾸중이 있더라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발령받고 크리스마스에 어머니와 함께 미리 방문했던 OO초등학교. 그때 다짐했던 마음을 기억해냈다. 연이는 어깨에 맨 가방의 끈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가방끈을 꽉 잡았다. 연이는 고개를 숙여 어머니에게 큰소리로 인사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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