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Jul 31. 2021

[교행일기] #27. 연말정산 후폭풍, 4대보험 사건

진정 국면, 폭풍 속 고요


4월이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파랑 버스에서 내린 연이는 4월 초부터 활짝 피기 시작한 가로수 벚나무가 뿌려놓은 벚꽃잎들이 눈이 내린 겨울처럼 하얗게 보도블럭과 대비를 이루며 아침 등굣길을 맞아줬다. 바람이 벚나무를 흔들면 후드득 후드득 하늘에서 떨어지는 벚꽃들로 어느 멜로영화에서 나올 법한 아주 진귀한 장면이 연이의 눈앞에 펼쳐졌다. 평소보다 파랑 버스가 엄청 빨리 달려준 덕분에 OO초등학교로 가는 길이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은 출근하느라 빨리 뛰지만, 연이는 그들을 보느라 느리게 걷고 있었다.


며칠 째 실장님은 연이를 부르지 않았고, 일도 이제 제법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었다. 4번의 급여를 마무리하는 동안 바쁘긴 했다. 그나마 조금 여유가 생기는 주가 매달 세번째 주였다. 오늘이 18일 바로 셋째 주의 첫날이다. 나름 오늘 여유있게 왔더니 다들 출근하기 전이었다. 블라인드를 반만 올리고 창문을 열어 밤새 어둠에 쌓인 퀘퀘한 냄새와 복합기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를 빼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행정실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청소기에 전원을 연결했다. 우~~~윙~~~ 행정실에 쌓인 먼지들이 청소기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몇 달째 연이의 마음의 복잡함도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려는 듯 구석구석 청소기를 가져다 대었다. 행정실 반 정도 청소기를 돌리니 사회복무요원 W도 왔다. 자연스럽게 가방을 내려놓고는 행정실을 나갔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W는 잘 알고 있었다. 화장실로 향했고, 밀대를 가져와 연이가 청소기로 민 곳을 묻고는 밀대로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제법 먼지가 많이 쌓였는지 먼지통에 먼지가 많이 쌓였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행정실이라 더욱 그러했는데, 그동안 너무 청소를 안 한 티가 많이 났다. 청소를 끝내고 자리에 앉으니 창가로 들어온 맑은 공기가 행정실의 청량함과 쾌적함을 더했다. 커피를 한 잔을 타서 자리에 앉았다. 이 주무관님 달력과 연이 달력을 비교하며 오늘의 할 일을 메모지에 적었다.


오늘의 할 일은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근로복지공단의 EDI에 들어가 5월 10일에 납부할 4월 보험료를 출력하는 일이었다. 일단 건강보험공단 EDI에 접속했다. 학교에는 공무원용 건강보험과 근로자용 건강보험이 따로 개설이 되어 있었다. 인증서로 로그인 한 후 공무원용 아이디, 비번을 치고 들어갔다. 사업장 보험료 첫 페이지에 보니 연이가 예상한 보험료보다 더 많이 나왔다.




연말정산 후폭풍, 4대보험 사건


????

순간 멍했다. 이상하다. 일단 출력을 눌렀다. 떨리는 마음으로 복사기 앞으로 달려갔다. 복사기에서 나오지도 않은 출력물을 잡아빼다시피 낚아챘다. 인쇄물은 갓 나온 것이라는 따뜻했지만, 연이의 손은 떨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면서 사업장 보험료 표지를 보니 다른 건 연이가 계산해서 급여할 때 선생님들에게 공제한 금액이 맞았으나 정산보험료라는 게 나왔다. 그것도 꽤 많이.


'이게 뭐지? 이게 왜 나온 거지? 무엇을 정산한다는 말이지?'

연이는 덜덜 떨리는 모습을 들키지 앉으려 했지만, 이미 뭔가 심각하게 흘러간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교행용 메신저에서 △△초등학교의 이 주무관님을 찾았다.


아뿔사. 로그인이 되어 있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으나 오늘 연가라고 했다. 세 번째 주 아니면 연가를 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은 몇 달째 근무해보니 알 수 있었다. 베테랑 이 주무관님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기들의 교행용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건강보험 정산료는 뭐예요?'

잠시 그들의 대화가 끊겼다. 정확히는 그들은 무엇인가 알기에 말을 안 하는 듯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연이님, 설마, 공제 안 한 것은 아니죠?'

'네? 뭘 공제해요?'


그들의 말로는 연말정산을 하면 4월에는 정산료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3월에 알 수 있고 4월 급여에 반영해서 보험료를 공제했어야 했다고 했다.


'....했어야 했다.'는 말이 심장을 관통했다.


연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대형사고를 친 것이 틀림없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이제 좀 연이가 하는구나 하는 우쭐은 아니지만 조막만한 자신감을 회복한 것 같았는데, 그게 모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니 연이는 진짜 심장에 총을 맞은 것처럼, 10만볼트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눈빛의 반짝임이 사라지고 회색빛으로 변했다.


'연이야! 연이야! 정신 차려봐!'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려고 타놨던 한 모금 마신 커피잔에 눈물이 떨어졌다.

이전 26화 [교행일기] #26. 증폭된 불안요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