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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30. 2021

[교행일기] #26. 증폭된 불안요소

떠나는 사람

불안요소 증폭


연이는 B가 떠난 충격이 쉬 가라앉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충격의 무게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의 일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일의 부담감은 연이의 어깨를 한없이 짓눌렀다.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헤어날 수 없는 뻘에 갇혀 발을 빼내려고 힘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럴수록 더 깊이 빠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연이의 실수는 처음 발령받은 때보다 잦아졌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몇 번을 본 것인데도 실수는 연이를 당혹하게 했다. 빨리 처리하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결재를 취소하고 다시 올리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실장님이 부르는 일이 많아졌고 연이는 더욱 자신감은 줄어들었다. 한 번 두 번 불려 가면서 연이가 연이를 못 믿는 상황이 되었다. 일을 할 때마다 코너 모퉁이에서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이 증폭되었다.


그러다 보니 결재 올리는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주 간단한 작업조차 느려지게 되었다. 1월 첫날 출근했을 때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그저 실장님이 부르지 않기만을 바랐다. 결재라인을 무서워하지 말라던 실장님의 조언도 잊은 채 점점 마음의 쫄보가 되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전화받는 소리에도 힘이 없어졌다. 점심도 먹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먹어도 복통이 나서 화장실을 부여잡아야 했다.


교장실에 결재를 받고 화장실에 갔다가 왔는데, 행정실 분위기가 엄청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연이는 무엇인가 자신이 잘못한 것 때문이려니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심스럽게 연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는데, 실장님이 연이를 불렀다.


"연 주사, 연 주사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실장님의 목소리에는 연이를 향한 내면에서 올라 온 불편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실장님은 옆에 있는 실무사님까지 호출을 했다. 연이와 실무사님은 같이 한참을 실장님의 꾸중을 들어야 했다. 실장님은 이 정도의 일은 실무사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본인이 지시한 것을 연이가 실무사 대신 했다고 생각했다. 연이는 아직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 바쁜 실무사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게 잘못이었다. 그 판단은 연이 같은 신규가 내리는 게 아니라 실장의 몫이었고, 실장의 판단을 연이가 무시한 것으로 보였기에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실무사님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연이도 실장님에게 결재판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는데, 옆을 보니 눈가에 벌써 눈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연이가 멋대로 판단을 내린 탓에 애꿎은 실무사님까지 혼나게 하고 말았다.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에 치여 다시 일에 빠졌다.




떠나는 사람


실무사는 그 후 며칠은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지만, 갑자기 나오지 앉았다. 김 주무관님도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이미 전화를 여러번 한 상태였다. 연이는 멍해졌다. 연이 때문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더 흘렀다.


일주일이 지났다.


실장님이 연이를 불렀다. 실무사 집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연이는 근무를 마치고 실장님을 따라나섰다. 실무사 집은 학교에서 먼 거리에 있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려면 적어도 연이가 학교에서 오는 만큼보다 더 일찍 아침에 나와야 했을 것 같았다. 실장님의 차는 4층짜리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다동 402호. 실장님은 차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실무사 집에 가보라고 하면서 꼭 자신이 전할 말이 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계단 하나 하나가 보기보다 오르기 쉽지 않게 되어 있었다. 실무사가 오르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내려오기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픈 다리로 이곳을 오르내리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계단은 더 이상 없는 4층에 도착했다. 옆집과 마주 보는 구조로 되어 있는 아파트였다. 현관문 중앙에 달린 벨을 조심스레 눌렀다.


띵동 띵동


처음에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연이는 이번에는 다시 초인종을 세게 눌렀다. 연이도 실무사에게 할 말이 있었다. 사과하고 싶었다. 두 번째 초인종에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연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실무사님, 저 연이예요. 걱정이 되어서 실장님하고 같이 왔어요. 힘들겠지만, 잠시 나와주시면 안 될까요?"


인기척은 조용해졌고, 한참 소리가 나지 않고 다시 고요해졌다.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현관문의 걸쇠를 제거하는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빼꼼히 열렸다. 실무사였다. 현관문이 조금 열린 틈 사이로 실무사는 얼굴을 내밀었다. 연이의 모습에 반가움과 어쩔 줄 모르는 당황함이 공존해 있었다. 멈칫하더니 이내 뭔가 결정을 내렸는지 연이에게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준비하고 나갈게요."


연이는 4층에서 내려와 실장님 차로 돌아갔다. 실무사가 조금 있으면 나온다는 얘기를 실장님에게 전했다. 10분 즈음 지나 실무사는 나왔고, 실장님은 차에서 내렸다. 빈 주차장 공터 쪽으로 실무사와 같이 움직였다. 실장님과 실무사가 얘기할 수 있도록 연이는 한쪽에 빠져 있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얘기는 끝났다.


실무사는 그다음 날 바로 출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이가 이해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실무사님가 아픈 다리를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 수술을 하고 나면 재활치료가 들어가서 근무까지 하기에는 버겁다며 그만두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때 실장님과 실무사가 나눈 얘기가 이것이었다. 김 주무관님 말로는 실무사를 다시 뽑아야겠다고, 4월 말까지만 다니기로 했다고 했다. 그날 연이가 대신 해준 일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아 연이는 마음이 착잡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실무사에게 사과는 했지만, 실무사는 연이의 잘못이 아니라며 기회가 되어서 수술을 한다고 수술을 하고 나면 아픈 다리가 아닌 일반인과 비슷하게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애써 웃음을 짓는 실무사는 남은 기간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4월의 중순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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