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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29. 2021

[교행일기] #25. 마지막 인사, 안녕

마지막 모임


"동기님들, 우리 한번 뭉쳐야 하지 않아요?"

단체카톡방이 불이 났다. 동기들이 모임날짜를 잡자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점심이 되자 모임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정해졌다.


금요일 저녁 6시, 장소는 부평이었다. 연이는 그런 단톡방을 보고만 있었다. 그 시간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며칠이 남은 이 시점에서 앞으로 뭐가 일어날지 모른 상황에서 결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갈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단톡방 메시지 알림이 또 왔다. 동기 B가 남긴 톡이었다.


B가 나오겠다고 하니 그의 근황도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 그일은 잘 마무리되었나 물어보고 싶었다. 그 사이 B는 연이에게 대화창을 안 열어서 더욱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연이도 가고 싶어졌지만 밀린 업무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시간 쯤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 B도 나온다는 것을 보면 잘 해결이 되었나 보네. 다들 어떻게 일하고 있나 궁금도 하니까 조언도 구할 겸 가보자. 가보면 뭔가 얻는 것도 있을 거야.'


지하철에서 내린 연이는 사람들에 휩쓸려 에스컬레이터에 딸려 들어갔다. 한 번도 사지 않을 것 같은 옷이 많은 가게와 어묵꼬치가 파는 곳을 지나 1장에 5천원부터 시작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가격을 내세운 구두가게를 끼고 지하1층으로 다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인천1호선을 타고 부평역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에스컬레이터가 지하 3층에서 지하 1층까지 실어나르고 있었다. 지하1층 부평 지하광장에 나오자 약속을 잡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중 자신의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이를 기다리는 동기 무리도 저쪽에서 연이를 봤는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연이도 손을 흔들며 그들의 무리 속에 녹아들었다.


금요일 부평의 거리는 반짝반짝 젊음의 거리였다. 연이가 가진 근심이나 걱정에 움츠린 어깨와 달리 그들의 어깨에는 들썩임과 얼굴에는 신남이 묻어 있었다. 빌딩의 간판들에서 내뿜는 빨강과 노랑과 하양 불빛들은 거리를 메운 사람들을 잡으려 애썼다. 사람들의 무리에 이탈한 동기들은 왼쪽 골목으로 돌아 약속장소로 향했다. 2층이 아닌 1층 어느 맥주집으로 일단 들어간 동기들은 다른 동기들이 합류하기 전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B가 보이지 않았다. 온다고 했었는데, 연이는 동기들에게 B에 대해 물었으나 아는 동기가 없었다. 동기들은 그간 힘듦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누가 실수 많이 했나 내기를 하는 그런 대회 같았다. 연이는 술 한 모금이 들어가자 눈이 감길 듯 피로가 몰려왔다. 며칠 째 잠을 자지 못해서 더욱 그랬다. 추운 곳에 있다가 들어와 몸이 녹아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맥주 500 한 잔을 다 먹을 즈음에 다른 동기 몇 명이 더 합류를 했다. 그러고 10분이 더 흘렀을까?


B가 도착했다. 처음에는 연이는 B를 알아보지 못했다. 동기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B는 애초에 없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대화를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연이 말고는 따로 대화창으로 얘기를 나눈 동기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연수원에서 교육을 같이 들은 연이는 B의 얼굴이 낯설었다. '야위었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몸으로 다가왔다. B는 금방 가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왔어요."

단지 연이와 동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 누구도 먼저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누가 실수대왕인가 경기를 하던 왁자지껄 동기들의 시선이 B에게 몰렸다. 연이는 알 것 같았다. 그의 얼굴과 몸을 보고 알았다. 그에게는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을.




마지막 인사


B는 맥주 한 잔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동기들에게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잠시 분위기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들의 행동에 일시적 제약이 가해졌다. 씁쓸해서 맥주를 B처럼 원샷을 하는 동기가 있는가 하면 뭔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다른 대화의 주제를 꺼내는 동기도 있었다. 연이는 모임 주최한 동기에게 양해를 구하고 B를 따라 나섰다.


금방 나와서 B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왼쪽도 오른쪽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는 며칠 밤을 새운 연이가 집중할 수 없게 했다. B가 근무하는 학교로 갔을 때 걸었던 B의 전화번호가 연이의 휴대폰 목록 스크롤 안에 있었다. 발신음이 길게 늘어졌다. B가 받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연이는 B가 서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곧장 걸어갔다. 다행히 아는 곳이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B는 연이가 따라 나온 것에 조금 놀라워했다.


"마지막이라면서... 인사는 정식으로 해야지 않을까 해서요."

연이의 말을 들은 B는 고개를 숙였다. 연이의 심정을 알아서였다. 연이도 B가 노력한 것을 알았기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B가 기다리는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B는 연이의 배웅에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렇게 B를 태운 버스에 손을 흔들며 그를 떠나보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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