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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02. 2021

[교행일기] #29. 딱 한 달만

5일간의 추수교육


연이가 사고 친 4대보험 사건을 실장님에게 보고를 했다. 정산분이 마이너스인 사람은 제외한 모든 선생님과 근로자들에게 전후 사정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고 일일이 전화를 드려 설명을 해드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다행이라 생각이 되었지만, 깨져버린 마음의 조각은 여전히 날이 연이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가끔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고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뛰는 것처럼 사정없이 요동쳤다. 혹여나 그 소리가 들릴까 말을 아꼈다.


2015년, 그 해에는 전년도와 다르게 5일간의 연수를 받고 발령 후에 다시 5일간의 추수교육을 하는 방식으로 변경이 되었다고 했다. 이는 전년도에 연수를 받았던 선배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발령받기 전 5일간의 교육은 발령 후 실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는 동기들이 나간 것으로 그 사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2주간 연속으로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동기들에게는 더 컸는지 불만을 있는 동기들도 있었고, 학교에서도 5일간 각 행정실에 막내가 교육을 받는 동안 일어나는 잡무를 커버하는 것이 부담인지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연이에게는 어쩌면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5일간 교육 출장을 상신했다. 결재가 모두 완료되었다. 아쉽게 아니 더 좋아지려고 떠나는 실무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미리 했다. 5월부터 새로 일하게 될 실무사를 실장님과 김 주무관님은 뽑았다고 했는데, 연이가 자리를 비웠을 때 행정실에 들러서 그런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추수 교육 첫날

마인드 관련 앱을 켰다. 여전히 잠에 들 수 없었던 연이는 밤새 또 떨어지는 꿈을 꿨다. 키가 클 나이는 이미 지났고, 키 작은 나의 바람을 실현해 줄 것도 아닌데, 연이는 계속 떨어진다. 일찌감치 깬 잠을 다시 자기에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휴대폰을 켜서 스트레스를 검색하다가 이를 줄여준다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종소리나 파도 소리 또는 비 오는 소리에 뚜뚜뚜하는 소리가 나는 일종에 예전 돈 있는 집안 아이들만 쓴다는 엠씨스퀘어 같은 것이었다. 뇌파 중 알파파와 세타파가 유지시켜줄 수 있게 도와주는 앱이라 설명이 되어 있는데, 연이에게는 그저 그런 앱 같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걸 누가 돈 주고 구입을 하나 했는데, 연이가 그 누가가 되었다. 나름 조금은 나아졌다고 위로했다. 


매일 파랑 버스를 타고 자다 깨면 내리곤 했는데, 오늘은 전철을 탔다. 전철의 두꺼운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사람들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연이에게는 따사로웠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죄어오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다. 연이는 잠시 눈을 감고 전철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추수 교육 마지막 날

동기 K도 동기 B도 없는 추수 교육이 끝났다. 동기들이 나간 것으로 동기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란거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나간 동기만큼은 아니지만 다들 조금씩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 한 편은 항상 불안의 씨앗이 남아있었다. 연이는 동기들과 얘기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만, 여전히 학교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평소에 10배만큼 빨리 뛰고 열이 올랐다 내렸다 조절이 안 되었다. 연이의 깨진 마음의 조각들은 다시 맞춰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의 칼날을 겨루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


나갈 실무사님과 새로 들어올 실무사님과 함께 한 회식 자리에서 연이 얘기가 나왔다며 실장님이 전화를 했다. 추수 교육 끝났으면 실무사에게 마지막 얼굴은 보여주러 오면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실무사님도 전화기에 대고 연이를 찾는지 그 목소리가 실장님의 휴대폰을 타고 연이에게도 들렸다. 그렇게 추수 교육이 끝나고 동기들끼리 뭉친다는 얘기가 돌고 있던 차였는데, 연이는 생각에 잠겼다. 연이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학교에서 부른다며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식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실무사도 새로 일할 실무사도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연이를 보자 실무사는 못 보고 갈 줄 알았다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새로 일할 실무사는 어느 정도 취기가 도는지 자기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를 외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처음 보는데 참 재밌고 유쾌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나중에 학교에서 보고 다시 인사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실무사는 연이에게 마지막 얘기를 남겼다.


"연 주무관님 덕분에 잘 지내다가 떠나요."


실무사에게 잘해준 게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연이는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잘 지내다가 간다는 말이 연이의 마음 한 구석을 먹먹하게 했다.


그렇게 월요일이 오고 새로 일할 실무사가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다. 김 주무관님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실무사와 통화하지 못했지만, 기관을 통해 에둘러 전한 말은 못 나온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급히 따로 뽑아야 한다며 서둘러 김 주무관님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김 주무관님의 바쁨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이의 깨진 마음의 조각들은 자꾸 연이를 상처 내기 시작했다. 연이에게는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것처럼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급여가 끝나는 시점에 말씀을 드리려고 했다. 가슴에 품은 그것을.


마지막 급여작업이라고 생각하며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면접을 보러 새로운 실무사님이 왔고 모두가 마음에 들어 했다. 연이는 새로운 실무사님이 얼떨떨해하는 모습에서 어디에선가 낯익은 느낌과 감정을 받았다. 아침 일찍 나온 실무사님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자리에서 우물쭈물했다. 연이는 그 실무사에게서 연이의 발령을 받고 학교 근무 첫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나가면 실무사님이 더 힘들어지겠지? 실무사님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한 달만 더 있다가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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