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Aug 04. 2021

[교행일기] #31. 깨져버린 마음 조각의 행방

완벽을 추구한 결과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개운한 아침을 맞이한다는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연이는 세면대의 물기가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문뜩 생각이 들었다. 연이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린 일을 직업으로 가진 기쁨은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왜 이리 불안해했을까? 이것조차 공무원 시험에서 문제 1개로 당락을 좌우하던 때를 못 벗어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지 않나 생각했다.


새벽 5시면 깨어 하루를 준비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 시간에 오늘은 이 일을 해야 하고 또 저 일을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는 해야지 하고 나름의 업무방향을 잡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닌 연이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직 교행 꼬꼬마이기에 배워야 할 게 많기에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그 부족함도 인정하고 미리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대비는 하되 실제 업무를 할 때 "대응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공시생 시절 미리 계획을 세운 것을 해내는 것은 모두 오로지 자신의 의지가 최대의 관건이었다. 그것 외에는 방해물이 없었다. 하지만, 연이가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서 미리 세운 계획을 실천할 때 자신의 의지 외에 다른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시각각 변하고 일어나는 학교의 업무에 따라 미리 세운 계획을 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해낼 시간이 어쩌면 필요했지만, 갑자기 일어나는 업무 역시 해내는 것도 실무자로서 갖춰야 할 스킬 중 하나였다.


혼자 하는 업무가 있는 반면 같이 하는 업무도 있어서 상대 쪽에서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어야 했다. 그 사이 다른 업무를 시작해 시간의 공백을 메워야 했으나 교행 꼬꼬마 연이에게는 아직 그 스킬까지 연마하지 못했다.




깨져버린 마음 조각의 행방


어렵다고 생각한 업무를 한 두 번 해보니 어떻게 하면 쉽게 할 수 있는지 요령이 보이고 그 노하우를 실무매뉴얼에 담기 시작했다. 공시생 중에서도 초장수생이었던 연이가 이 교육행정직으로 학교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연이의 손으로 작성한 생생한 실무매뉴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실무매뉴얼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실무매뉴얼의 숫자만큼 깨져버린 마음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속도는 빨라졌고, 어느새 깨진 곳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업무의 숙련도가 완성이 되어갔다.


그렇다고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연이에게는 불가능했다. 실수도 여전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단지 연이를 둘러싼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기억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실무매뉴얼 말고 다른 무엇인가가 연이에게 필요했다.


연이는 다시 마음이 깨지고 싶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했던 그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지만, 깨져버린 마음의 실금은 여전히 남아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쓰라리거나 아프지는 않다. 마음은 그저 바보같이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이가 마음이 아픈지 그날그날 살펴야 한다. 오늘은 어땠는지 괜찮았는지.


오늘은 잘 마무리되었다. 완벽한 오늘은 아니었지만,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안하지 않고 궁금했다.


연이에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