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접수하기
사회복무요원 W이 솔이 주무관님에게 1년 넘게 복무하면서 알게 된 학교 관련 부수적인 것을 설명해주면서 문서접수에 대해 설명해줬다. 연이도 솔이 주무관님과 함께 귀를 쫑긋 세워서 들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고 있으면 알고 있을수록 업무는 그만큼 쉬워진다는 것을 몇 개월 동안 자연스레 몸을 체득한 것이라 W의 입을 쫓아 적기도 하고 웅얼거리기도 했다.
그러고는 솔이 주무관님 자리에 사람이 없을 때 대신 사회복무요원이 문서접수를 했던 기억을 살려 얘기를 해줬다.(글을 쓰는 현재는 큰 사건 이후 행정보조로 복무를 하는 사회복무요원에게조차 개인정보 취급과 관련하여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전자문서의 경우는 모두 제한을 하고, 비전자문서의 경우에도 실무자가 함께 같이 처리하는 경우에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변경이 되었다.)
"학생·교육 관련은 모두 교무 쪽 교감선생님에게 접수 분류하고, 시설·회계 관련은 모두 행정실장님에게 접수하면 돼요."
(지금 생각해보면 요것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이다.)
문서를 접수할 수 있는 권한은 학교마다 2명이 지정하게 되어 있다. 연이 역시 접수 권한이 있어서 이제는 솔이 주무관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기면 연이가 문서접수를 하고 분류를 해야 하기에 들은 바를 이면지에 적고 나름의 실무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이면지 맨 위에 "문서 접수하는 방법"이라고 썼다.
솔이 주무관님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문서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4개월 일찍 들어온 연이가 알아볼 수 있는 문서인지 솔이 주무관님과 함께 보며 분류를 했다.
"이건 교무, 저건 행정, 아, 요건 교무인가 행정인가. 어렵다."
통제 가능한 범위 늘리기
모든 게 낯선 상태에서 업무를 시작할 때는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한다. 보고 또 보면 익숙해진다. 이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은 '전임자 따라하기'다. 여기에 헷갈리는 문서가 왔을 때 키워드를 뽑아 전년도, 전전년도, 안 되면 3년 전, 5년 전까지 문서가 누구에게 분류가 되었는지 살펴보면 된다. 이 정도까지가 통제 가능한 목표다. 퍼센트로 치면 85%정도. 나머지 15%는 예외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놓으면 된다.
연이의 일기장에는 위 문구를 써놓고 실무매뉴얼을 마무리했다. 예외가 많으면 일하기 복잡하지만, 그런 예외도 자주 일어나면 통제가 가능했다. 1월 1일의 연이와 현재 6월의 연이는 분명 다르다. 그리고 익숙해진 부분이 늘어났다. 솔이 주무관님이 보고 듣고 배운 것은 모두 연이도 적어서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했다. 자연스레 실무매뉴얼 말고 필요한 것이 뭔지 연이의 생각이 모아지고 있었다.
장소
1월 1일 OO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연이를 힘들게 하던 것은 3가지였다. 전체적인 분류로 나누자면 업무, 장소, 사람이었다. 이는 연이가 처음 해보는 직업이라 적응하려면 저 3가지를 통제가능한 범위 안에 놓아야 했다. 그중에서 5개월이 지나니 제일 먼저 "장소"가 익숙해져서 발령받아 근무를 하지 않으면 이쪽 동네를 전혀 알지 못했을 텐데, 파랑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 낯섦이 사라지고 편안함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워졌다. '장소'가 자연스럽다고 해서 학교에 어디에 무엇이 있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까지는 아니었다. 5개월간 집과 행정실, 급식실, 1층 화장실, 교장실, 교무실 정도만 왔다 갔다 했을 뿐이기에 전체를 다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업무를 보기에는 그 정도는 익숙함을 느낄 85퍼센트에 해당이 되었다.
업무
업무는 전체적으로 10% 정도만 익숙해졌다고 할까? 대신 급여 부분은 50% 정도로 자주 하는 업무라 그런지 익숙함에 도달하는 진행률이 빠르게 오르는 것 같았다.
사람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교무부장 정도 얼굴만 익숙할 정도였고, 교육감 소속 근로자는 올 때마다 이름을 묻고 어느 직종에 있는 분인지 익히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건 급여와도 연관이 많아 빠르게 익혀야 했다.
이렇게 정리를 조금 하니 1월의 연이와는 확연히 달라짐을 느꼈다. 감성적인 부분이 강한 연이가 약간 분석적이 되었다랄까. 나름 새로운 기술을 얻은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는 사이 실장님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연 주사, 오늘 점심은 뭔가?"
아차차, 역시 통제 가능한 범위의 다른 부분은 우물쭈물이었다. 이참에 영양사 선생님에게 한 달 메뉴표를 받아 파티션 가까운 곳에 붙여놔야겠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어야 열심히 일하지.'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는 연이는 실장님에게 말을 건넸다.
"실장님~~~ 오늘은 돈육간장불고기랑 해물완자전은 확실해요. 냄새가 나요."
행정실 문을 열고 연이의 코로 들어오는 냄새를 통해 점심 메뉴를 추측하며 빙그레 웃었다.